경기 안양시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하는 하영준 씨(24)는 23일 휴가를 냈다. 삼천리 정기주주총회장에서 주주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다. 그를 주총장까지 이끈 사람은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다.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주식 투자를 시작한 하 씨는 버핏 관련 책을 찾아 읽으며 주식의 기초를 배웠다. 그는 “버핏의 말처럼 저평가된 몇몇 기업에만 길게 투자한다”고 말했다.
하 씨처럼 한국의 워런 버핏을 꿈꾸며 주식 투자에 뛰어드는 ‘버핏 키드’들이 늘고 있다. 버핏 키드는 버핏의 투자철학과 종목 선정 및 투자 방법을 추종하는 이를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단타매매나 시류에 휩쓸리는 투자를 거부하는 대신 종목을 선정하기 위해 기업 탐방에 나서는 등 종목 분석을 철저히 한다. 이른바 긴 안목을 갖고 투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흐름이 ‘버핏톨로지(Buffettology·버핏의 투자철학)’, ‘버핏주의자(Buffettologist)’ 같은 신조어를 앞세운 출판계의 상술로 촉발된 측면이 있고, 자칫 개인투자자에게 헛된 꿈만 심어줄 수 있다는 비판도 일각에서 나온다. ▶[채널A 영상] 강남부자 몰린다는 그리스 주식, 투자해도 안전할까?
○‘버핏 키드’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
최근 삼천리 주총을 앞두고 사외이사 선임 등 주주 제안을 낸 강형국 씨(36) 역시 대표적인 버핏 키드다. 2003년 PC방을 운영하던 그는 버핏의 책에 빠져들어 전업투자를 시작했다. 국내에서 판매되지 않는 원서를 해외 사이트에서 구매해 수십 번 탐독하고 버핏 회장의 발언 등도 줄줄이 꿰고 있다. 그는 “주식 투자를 한 10여 년 동안 연평균 수익률이 60%가 넘는다”면서도 “아직 버핏의 가르침을 따라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겸손해했다.
강 씨는 상장사의 주식 담당자(일명 주담)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투자하는 기업의 재무제표는 물론이고 손자회사의 현황까지 꼼꼼히 살펴 질문하기 때문이다. 기업 투자설명회(IR)는 물론이고 기업에서 투자한 땅까지 직접 찾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할 정도다.
버핏 키드의 출신은 다양하다. 전직 방송국 PD였던 차모 씨(39)는 몇 해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투자자의 길로 들어섰다. 차 씨는 직접투자를 하는 버핏 회장과 달리 선물(先物)투자를 주로 하지만 꿈꾸는 미래는 비슷하다. 그는 앞으로 원유, 환율 등 다른 선물에도 투자해 버크셔해서웨이 같은 글로벌 투자사를 만드는 게 목표다. ○“너도나도 버핏 꿈꾸다 폐인 양산”
‘버핏 열풍’이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업투자자가 이미 100만 명을 넘는 상황에서 버핏 회장의 성공 스토리만 믿고 무작정 주식 투자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급증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버핏을 이용한 상술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직까지 버핏 회장이 직접 쓴 책은 한 권도 없지만 국내 출판업계에는 버핏 회장의 투자를 분석하거나 제목에 ‘버핏’을 넣은 책이 무려 60권을 넘는다. 수많은 주식 투자 관련 교육업체들 역시 과목 이름에 ‘버핏’을 단 수업을 개설해 매진 사례를 이어가고 있다.
이종우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에서는 투자에 성공한 일부 슈퍼개미의 성공신화를 지나치게 미화하는 경향이 심하다”며 “10명 중 9명은 충분한 노력과 확고한 투자철학 없이 뛰어들었다가 결국 좌절하고 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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