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등 3개사 ‘가격 담합’ 이유 1354억 맞아
소송 준비에 설비투자 축소 자구책 마련나서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치를 때만 하더라도 라면 한 봉지 가격과 시내버스 요금이 140원으로 똑같았어요. 버스비가 1150원이 되도록 라면값은 여전히 700원인데 이래도 담합입니까.”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담합 혐의로 1354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당한 라면업계가 못내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2일 라면업계에 따르면 가격인상 담합이 있었다고 자진신고하고 과징금을 면제받은 삼양식품을 제외한 업체들은 “과징금 부과 결정문을 받아본 뒤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결정할 것”이라면서도 소송 등 ‘자구책’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점유율 1위 업체인 농심은 공정위의 가격담합 조사 때부터 법률자문을 해온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해 행정소송을 내기로 내부 방침을 확정했다.
농심은 지난달 말 공정위의 발표 직후 연간 100억 원 안팎 규모인 신규설비 투자를 최소화하는 등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새 경영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농심 이외의 업체들도 판촉 및 마케팅비를 줄이고 수익이 나지 않는 제품군을 정리하는 등의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한 라면업체 임원은 “이익률이 5%도 채 되지 않는 박리다매(薄利多賣) 상품인 라면업계에 1354억 원이나 되는 과징금을 물린 건 장사 그만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공정위는 2000년 말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라면업계 4개사 대표자 회의에서 ‘농심이 먼저 가격을 올리면 다른 회사가 따라서 올린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이 회의가 2010년까지 이어진 담합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대표자 회의에서 가격인상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주장은 삼양식품이 자진 신고한 내용이다. 삼양식품은 관련 증거로 이 모임에 사장을 대신해 참석했던 당시 영업본부장 최모 씨(2006년 사망)가 회사 내부에 보고한 내용을 공정위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라면업계는 “열린 적이 없는 모임(라면업계 4개사 사장단 회의)에 참석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한 라면업체 관계자는 “이미 세상을 떠나 구체적 내용을 확인해볼 방법이 없는 최 씨의 추상적 진술 말고는 다른 증거가 나온 게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3년 라면사업에서 철수해 현 상황에서는 객관적인 ‘제3자’ 입장인 빙그레도 ‘문제의 모임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가격 담합을 위해 정보를 교환했다는 공정위 발표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라면업계의 해명이다. 공정위가 증거로 제시한 e메일 내용은 가격인상 사실을 거래처에 알려주거나, 언론을 통해 가격인상 사실이 알려진 직후에 경쟁업체 관계자에게 보낸 것들이어서 가격결정 이전 단계의 정보 교환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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