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는 도요타자동차의 가장 강한 라이벌이 될 것이다.” 2007년 한국을 방문한 조 후지오(張富士夫) 일본 도요타자동차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외 자동차업계에서는 ‘인사치레’ 정도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전망은 머지않아 현실이 됐다. 지난해 현대차는 660만 대를 팔아 세계 자동차업계에서 5위에 올랐다. 790만 대를 판 도요타(4위)와의 격차가 사상 최저치인 130만 대로 줄었다. 올해 사상 최대 판매치인 700만 대의 목표를 세운 현대·기아차는 올 1분기(1∼3월) 글로벌 시장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14% 늘어난 175만여 대를 판매했다. 2월까지의 자료만 집계된 도요타는 올 두 달 동안 약 23% 급증한 173만여 대(히노·다이하쓰 포함)를 생산해 지난해 대지진 여파에서 완벽히 벗어난 모습이다. 동아일보는 2004년 영국 BBC의 자동차전문프로그램 ‘탑기어’에서 “바퀴 달린 냉장고”란 조롱을 받던 현대차가 세계 1위를 향해 질주하던 도요타를 위협하는 입지에 오르기까지의 성공 비결과 향후 과제를 조직구조와 생산·판매 전략, 노사관계 분석을 통해 다각적으로 살펴봤다. 》 현대차와 도요타는 제한적인 내수시장에서 벗어나 해외시장을 적극 공략해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과 ‘창업자 가문’이 회사를 이끈다는 태생적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최근의 성장 과정에는 큰 차이가 있다.
현대차그룹은 2000년 출범 이후 지난해까지 규모를 쉴 틈 없이 늘려왔다. 2008년부터 연평균 10%의 성장을 거듭한 현대차는 2010년 처음으로 글로벌 5위(기아차 포함)에 올랐다. 탄탄한 내수시장 입지를 기반으로 해외에서 참신한 마케팅을 펼친 결과다.
부품계열사인 현대모비스는 ‘모듈화’를 진행해 430여 개에 달하는 현대차의 1차협력사를 최대한 응집하는 안정적인 부품 공급 기반을 만들었다. 모듈화란 협력업체들이 만든 수많은 개별 부품을 1차 협력업체가 조립해 ‘부품 덩어리(모듈)’ 형태로 대기업에 공급하는 생산방식을 말한다. 덴소 등 도요타 부품 계열사가 개별 부품의 품질을 높이는 ‘모노즈쿠리(物つくり·일본 제조업의 장인정신)’에만 치중하는 사이 효율성 강화에 주력한 것이다.
2010년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준공으로 철강-부품-완성차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 구조를 구축한 것도 현대차그룹의 최대 강점이다.
또 현대차그룹의 성장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74)의 용인술(用人術)이다. 수시 인사를 통해 조직에 늘 긴장을 불어넣었고 수시로 국내외 현장을 찾아 엄격한 평가를 내리는 ‘현장 경영’을 펼쳤다. 그룹을 궤도에 올리는 과정에서는 자신의 경영 기반을 마련한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출신을 중용했다.
한 전직 현대차 임원은 “정 회장은 틈이 나는 대로 한남동 자택에 둔 인사 파일을 뒤적인다”고 했다.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56) 사장은 창업자 도요다 사키치(豊田佐吉)의 증손자인 ‘4세 경영인’이다. 1984년 도요타에 입사해 2000년 이사 취임 후 고속승진을 거듭하다 미국발 경기침체로 세계 자동차업계가 흔들리던 2009년 대표이사 겸 사장 자리에 올랐지만 2010년 대규모 리콜사태, 지난해 3월 동일본 대지진 등 많은 불운을 겪으며 현대차에 추격을 허용했다.
이 과정에서 도요다 사장의 위기 대응능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와세다대의 고바야시 히데오(小林英夫)교수는 “30만 명의 사원을 이끄는 지도자에게는 자동차에 대한 애정뿐 아니라 인재 기용과 권한 위임의 자질도 필요하다”고 했다.
도요타의 ‘관료주의’가 새 성장동력인 신흥 시장을 무대로 한 글로벌 경영에서 걸림돌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현대차 등 한국 기업의 사원들과 정반대로 해외 근무를 꺼리는 도요타의 젊은 엘리트도 문제시된다. 도요타는 조직 규모가 커지며 엘리트 위주의 승진이 이루어졌다. 중추인 부사장단 5명은 모두 일본 사회의 엘리트로 평가받는 국립대 출신으로 각자의 파벌을 갖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도요다 사장은 일대 변혁을 노리고 있다. 지난해 해외 지역별 권한을 강화하는 ‘글로벌 비전 2020’을, 이달 9일 연구개발(R&D)에 있어 수석엔지니어에게 전권을 주는 제품개발 혁신방안을 잇달아 발표했다. 도요타의 ‘대정봉환(大政奉還·1867년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일왕에게 통치권을 돌려준 사건)’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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