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가계-국가부채 보고서 “가계부채로 소비 위축… 장기침체 유발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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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3일 03시 00분


‘가계부채가 단기간에 경제위기로 전화(轉化)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이미 한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 시작했고 앞으로 장기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

통화신용정책을 담당하면서 국내 최고 권위의 조사연구기관 중 하나인 한국은행이 ‘국내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10개월 동안 연구해 얻은 결론이다. 많은 경제전문가는 지난해 말 현재 약 913조 원에 이르는 가계부채를 올해 국내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 보고서는 가계부채 문제가 외환위기 같은 엄청난 외부 충격이 없는 한 당장 폭발하지는 않겠지만 이미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지적했다.

○ 가계부채, 경제위기로 전이 가능성


한은은 소득대비 원리금상환비율(DSR)이 40% 이상인 가구를 ‘과다채무’, 부동산 평가액 대비 부채(대출+임대보증금) 비율이 60% 이상인 가구를 ‘과다차입’ 가구로 정의하고 외부 충격이 발생했을 때 이들의 비율이 얼마나 상승하는지를 추정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의 충격이 발생하면 전체 부채 보유 가구 대비 과다채무 가구 비중은 현재 17.6%에서 19.3%로, 과다차입 가구는 14.8%에서 16.5%로 각각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수준의 충격이 오면 이들 가구의 비중이 각각 24.6%, 22.4%로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가계부채가 그 자체로는 엄청난 위기를 일으키진 않겠지만 다른 외부 충격과 겹치면 폭발력이 커진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국내 가계는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은 데다 실물자산 비중도 커서 금리 및 부동산가격 리스크에 취약하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가계부채 수준은 이미 소비 위축을 통해 경기침체의 장기화도 유발하는 악영향을 주고 있다. 통상 적정규모의 가계부채는 민간소비를 늘리고 생산을 자극하는 순기능을 한다. 하지만 부채 규모가 너무 커지면 가계가 빚에 짓눌려 소비를 줄이는 역기능이 발생한다.

보고서는 “이자상환비율(가처분소득 대비 이자비용)이 이미 2009년부터 임계치인 2.5%를 넘어 소비 위축이 현실화됐다”고 진단했다. 실제 2007년 이후 가계소비 증가율은 연평균 2.5%로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3.4%)을 밑돌고 있다.

○ 국가부채 비율 100% 넘을 수도


한은은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2015년 정도까지는 양호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재정위기국들의 수준까지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고령화로 인한 각종 복지지출과 부실 공기업 등에 투입되는 공적자금 등 잠재채무를 모두 계상한 결과다.

보고서는 우선 공적연금의 적자를 정부지출로 보전한다고 가정했다. 예를 들어 공무원연금의 적자는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0.1%에서 2030년엔 0.7%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 공공의료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적자도 계산 항목에 넣었다. 이처럼 인구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성 지출만 따져도 정부부채는 GDP 대비 70%대로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부실 공기업에 따른 재정 손실, 공공주택 공급지원 등 잠재적, 금융성 채무까지도 고려했다. 보고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손실을 보전하고 금융부채비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만 정부가 2030년까지 최대 61조 원을 부담해야 한다고 계산했다.

또 보고서는 “이런 요소들을 감안하면 국가부채비율이 2030년 106%까지 증가하겠지만 한국 정부부채비율의 상한은 140∼160%로 추산돼 어느 정도 여유는 있다”면서도 “민간부채가 과도하게 쌓여 위기가 발생하면 구제금융이나 경기부양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부부채로 전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한국은행#가계부채#국가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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