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정상에 섰을때 변신하라”… 호암에게 변신은 신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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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3일 03시 00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
《 “정상에 올랐을 때 변신을 모색하라. 특정 상품이나 사업이 정상에 올랐을 때 다른 상품이나 다른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신종 상품 개척에서 한발 늦었다. 모든 상품과 사업은 그 수명이 있고 한계가 있다. 이를 미리 아는 지혜가 아쉽다. 그 지혜를 포착하기 위해 사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이병철·1983년 3월 28일 미국 워싱턴에서) 》
조직에 위기의식과 긴장감을 불어넣는 방면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아버지를 닮은 듯하다. 이 회장은 삼성의 실적이 좋을 때도 ‘지금이 위기’라는 시그널을 대내외적으로 자주 내보냈다. 고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1910∼1987)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정상에 올랐을 때 변신을 모색해야 한다며 일찍부터 삼성그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호암의 일생을 되돌아보면 말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호암에게 변신은 하나의 신조와 같았다.

6·25전쟁이 끝나기도 전인 1953년 초 호암이 설탕 산업에 뛰어들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모두 만류했다. 양조장과 무역업으로 이미 많은 돈을 번 호암은 화폐가치 하락과 사회적인 불안정 등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대규모 설탕 공장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호암은 당시 100% 수입에 의존하던 설탕을 국내에서 생산해 싼값에 내놓으면 국가적으로도 이득이고 자신도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해 말 그는 제일제당을 창업했고 수입 설탕의 3분의 1 가격인 제일제당의 설탕은 생산이 수요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잘 팔렸다.

제일제당의 성공 직후 호암은 곧바로 제일모직 설립을 준비한다. 당시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던 설탕과 모직 등의 국내 생산은 시대적 요청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섬유산업이 아직 싹도 트지 않은 상황에서 모방(毛紡) 공장의 설립 또한 위험 부담이 컸다. 반대도 많았다. 재계에서는 “(호암이) 제당에서 요행으로 성공하더니 세상만사를 너무 손쉽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까지 떠돌았다. 그러나 호암은 치밀한 사전 준비 끝에 수입 양복지의 5분의 1 값에 국산 양복지를 만들어냈다.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의 성공으로 호암은 거부의 칭호를 얻게 됐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1960년대에는 후발주자로 전자산업에 뛰어들었고 말년에는 지금의 삼성전자를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 산업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카로스는 밀랍으로 만든 인조 날개로 하늘을 나는 데 성공하지만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간 나머지 밀랍이 녹아 버린다. 하늘을 날던 이카로스는 결국 에게 해에 빠져 목숨을 잃는다. 세계적 경영전략 학자인 캐나다의 대니 밀러 교수는 1992년 낸 책에서 이를 ‘이카로스 패러독스’라고 불렀다. 이카로스가 높이 날 수 있었던 원동력인 밀랍 날개가 태양과 가까워져 녹아 버린 것과 같이 기업이 성공 요인에 안주하다가 그 성공이 실패 요인으로 반전되는 상황을 일컫는 것이다.

성공에 안주하는 기업들은 변화를 거부한다. 필름의 성공에 안주한 코닥이 그랬고 휴대전화 판매량 세계 1등에 안주한 노키아가 그랬다. 만약 호암이 제일제당의 성공에 안주해 변화를 모색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삼성그룹은 없었을 것이다. 호암은 제당의 성공을 뒤로하고 모직사업을 시작했고 그 이후에도 한 분야에서 성공한 뒤 지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해서 또 다른 성공을 이뤄냈다. 이 과정에서 지나친 자신감으로 ‘성공의 함정’에 빠질 만도 한데 호암은 그마저도 철저한 준비와 치밀한 전략으로 피해갔다.

흔히들 기업 경영은 “만세 부르는 순간 내리막길”이라고 한다. 정상에 오른 기업들은 곧바로 다음 단계의 제품 생산에 들어가야 하고 새로운 사업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정상을 뒤로하고 내리막길을 내려와야 한다. 기업들이 항상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면서 신성장동력 발굴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호암은 이미 1950년대부터 정상에 오른 것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해 왔다. 이런 마인드는 이카로스 패러독스를 극복한 원동력이 됐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04호(5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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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 ‘CEO 승계’ 노하우

▼ Harvard Business Review


포천에서 선정한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 재임기간의 중간값은 지난 10년 사이 9.5년에서 3.5년으로 줄어들었다. 한 사람이 CEO 자리에 앉아있는 시간이 짧아졌다는 의미다. 이렇게 CEO가 자주 바뀌는 상황에서 CEO 승계 계획을 제대로 짜두지 않으면 적임자를 탐색하고 선택해서 본격적으로 업무를 맡길 때까지 시간과 비용 낭비가 불가피하다. P&G 사례를 주목할 만하다. P&G 이사회는 앨런 래플리가 CEO로 취임하자마자 뒤를 이을 후보를 선별하고 양성해 기업 운영과 전략이 연속성을 갖도록 만들었다. P&G의 승계 계획 노하우를 자세히 소개했다.



12억 印시장 공략하려면…

▼ 스페셜 리포트


12억 인구, 중산층 소비자 3억 명,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25세 미만…. 인도를 설명하는 수식어들이다. 인도는 넓은 영토와 다양한 자원, 많은 인구 등으로 잠재력을 인정받은 시장이다. 많은 글로벌 기업이 호시탐탐 진입을 노리는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그러나 관심에 비해 국내 기업들에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힌두교와 계급 제도 등 단편적인 지식만 알고 있는 경영자도 많다. 인도에 대한 편견도 적지 않다. DBR는 스페셜 리포트로 인도 시장의 성장 잠재력과 특성, 공략 방법을 집중 조명했다.
#호암#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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