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시장 한계”… 기업들 신흥국 전문가 육성 붐
금융권-中企까지 확산… 신시장 개척 첨병역 톡톡
이건희 회장, 여성비율 높이고 체류기간 연장 주문
“아마존 원주민이 ‘아나콘다 요리를 대접하겠다’고 제의했습니다. 초대에 응해야 할지 고민입니다.”(에콰도르에서 연수 중인 박광일 대리)
“아나콘다를 먹으면 디스토마에 걸릴 수 있으니 거절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이창규 사장)
최근 종합상사기업인 SK네트웍스의 사내게시판에는 이런 글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이 회사가 해외지역전문가 과정을 만들어 올해 초 라오스 에콰도르 칠레 케냐 중국 등 15개국에 파견한 젊은 직원 21명이 수시로 글과 사진을 올리면 임직원들이 격려와 칭찬의 댓글을 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현재 진출하지 않은 42개국에 5년간 모두 300여 명의 직원을 내보내 해외 전문가로 육성하기 위해 이 과정을 올해 처음 만들었다.
2008년 이후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의 경기 침체가 지속되자 국내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신흥개발도상국 전문가를 길러내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기존 선진국 시장의 불황이 장기화할 것으로 내다본 기업들이 1980, 90년대같이 신시장 개척을 위한 첨병 양성에 나선 것이다.
1990년부터 해외지역전문가제도를 운영하면서 글로벌 시장을 개척해온 삼성그룹도 최근 이 제도의 강화에 나섰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해외지역전문가를 선발할 때 여성 비율을 30%까지 높이고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전문가는 (충분한) 언어 습득을 위해 체류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라”고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20여 년간 약 80개국에서 4400명의 지역전문가를 양성한 삼성은 역대 중남미 삼성전자 법인장 대부분이 해외지역전문가 과정을 거친 직원일 정도로 이 제도를 성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SK네트웍스의 해외지역전문가 과정을 직접 만든 이창규 사장은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 직원들이 보내오는 사업 아이디어에 일일이 코멘트를 단다. 인도네시아에서 연수 중인 한 직원이 현지의 주유소사업 진출을 위한 보고서를 올리자 이 사장은 “과거에도 인도네시아에서 주유소 및 충전소 사업 제의가 있었지만 사업성이 높지 않아 접었다”고 답했다. 또 한 직원이 “중국 상하이 인민공원의 한 벽면에 부모나 조부모가 아들 및 손자의 결혼 배우자를 찾는다는 내용의 A4 전단이 빽빽하게 붙어 있다”고 게시판에 올리자 “중국의 이런 분위기를 비즈니스로 엮어 보면 어떨까”라며 신사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개도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지역전문가 육성은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우려는 국내 금융권을 비롯해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시장을 뚫으려는 중소·중견기업으로도 확산되는 추세다.
동남아 지역의 금융회사 인수를 추진 중인 우리금융그룹은 최근 신흥개도국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글로벌 인재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 올 초 중국 서부지역에 진출한 우리은행은 올 상반기에는 인도 첸나이지점 개설 및 브라질법인 설립 등을 위해 해당 국가 전문가들을 육성하고 있다. 경기도와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도 중소·중견기업들의 요청에 따라 ‘인도지역전문가 과정’을 개설했다.
올 하반기 브라질에서 공장 준공을 앞둔 현대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공장 건설에 앞서 브라질 사정에 밝은 한국인 전문가를 찾는 게 매우 힘들었다”며 “국내 기업들이 브릭스 국가를 중심으로 해외 전문가를 이른 시일 내에 키워내야 시장에 접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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