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의 6대 핵심 프로젝트인 ‘신화역사공원 조성’을 위해 도로를 닦고 가로수를 놓는 등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직 허허벌판이지만 계획대로라면 2015년에 400만 m²의 대규모 테마파크가 조성된다. 특히 이 프로젝트의 한 사업으로 중국인들을 겨냥해 레저, 숙박, 쇼핑 등이 모두 가능한 새로운 차이나타운을 지을 계획이다.
바로 옆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 379만 m²에선 영어교육도시가 들어서고 있다. 지난달 9월부터 1단계 시범학교가 문을 열었고 주변에는 주거시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의 조기유학 수요를 흡수하려는 목적이다. JDC 관계자는 “중국 기업의 투자가 이어지고 중국인들의 조기유학 수요를 잡을 수 있다면 이곳은 중국인들에게 관광뿐만 아니라 거주지로도 손색이 없는 새로운 지역으로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이나 머니의 물결이 거세게 밀려오면서 제주도를 중심으로 중국 기업의 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중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정부와 기업, 지방자치단체의 발걸음도 바빠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황금어장’을 앞에 두고 ‘쌍끌이 선단’은커녕 변변한 그물도 갖추지 못하고 뛰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 자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면 좀 더 파격적인 제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너도나도 중국 러브콜… 성과는 아직
중국은 3월 말 현재 3조3050억 달러의 외환을 가진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국이다. 지난해 연간 해외직접투자액은 680억 달러에 이른다. 최근 중국 상무부는 해외투자를 연평균 17% 늘려 2015년에는 1500억 달러 수준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국의 해외투자 장려책인 ‘쩌우추취(走出去·외국으로 나가자)’의 방향은 바로 옆 한국을 비켜가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중국 투자 유치 실적은 6억5100만 달러로, 전년보다 57% 늘었지만 중국 전체 해외투자의 0.9%에 불과하다.
지자체들도 경쟁적으로 중국 자본 유치에 뛰어들었지만 양해각서(MOU) 수준이 아닌 실제 투자로 이어진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국내에 조성된 ‘차이나타운’도 중국인 관광객과 투자 유치의 거점 역할을 하기보다는 중식당들만 들어선 ‘짜장면 거리’나 슬럼화된 외국인 집단거주지역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각 지자체가 중국 투자를 유치했다고 홍보하는 사례는 대부분 일회성 소비라고 할 수 있는 관광객 유치 사례뿐”이라고 지적했다. ○ 중국 자본 뛰어놀 큰판을 짜자
이 같은 투자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 중국 자본의 물꼬를 제대로 트기 위해서는 중국인이 투자하고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도시급의 대규모 거점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중국 사업에 관심이 큰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차이나타운 수준이 아니라 수만 명이 한국으로 이주해 거주할 수 있는 중국인 도시를 서해안 쪽에 하나 만들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다.
조세나 임차료 감면 등 다른 나라들과 비슷한 인센티브가 아니라 중국 자본이 한국을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호제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투자가 이어지려면 중국인들이 대규모로 들어와 커뮤니티를 이뤄 살 수 있는 정주(定住)여건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중국인을 위한 원스톱 행정서비스, 중국인 학교, 자유롭게 진료 받을 수 있는 병원과 응급의료체계, 중국방송과 문화시설 등을 모두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이나시티’가 가능하려면 중국인의 국내 출입을 쉽게 하고 투자 문턱도 파격적으로 낮춰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대표적으로 무비자 또는 장기 복수비자 발급과 부동산 투자자 영주권제도 확대가 거론된다. 영주권제도는 외국인이 국내 부동산에 일정 금액(제주도는 5억 원 이상)을 투자하면 거주 자격을 주고 5년 후엔 영주권을 주는 제도다. 현재 제주도와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인천 영종지구, 전남 여수 대경도 등 4곳에 적용되고 있다.
‘차이나시티’가 가능한 지역으로는 제주도와 수도권이 거론된다. 석동연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은 “관광과 휴양이 목적이라면 제주도, 비즈니스 투자 유치가 목적이라면 대부분의 제조업이 몰려 있는 수도권에서 가까운 지역이 적당하다”고 말했다. 강호제 연구위원은 “인천 및 황해경제자유구역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며 “이곳에 중국을 위한 새로운 터를 닦아주면 현재 투자 유치가 부진한 경제자유구역을 살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 넘어서야
‘차이나시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불법체류자 및 범법자 양산, 돈세탁 악용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한국을 점령한다’는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도 넘어서야 할 과제다.
오승렬 한국외국어대 중국학부 교수는 “영토 일부분을 떼 주는 듯한 ‘시티’라는 개념보다는 ‘차이나 비즈니스 콤플렉스(복합단지)’의 개념이 더 적절할 것”이라며 “생산적 투자 유치가 뒤따르지 않는 한 특구를 조성해봐야 베드타운 외에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부작용만 따지기보다 제도적 보완책을 검토하면서 전향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수연 교수는 “중국 자본 유치에서 다른 나라를 앞서려면 파격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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