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보험업계의 재보험 제공 거부로 이란산(産) 원유 수송이 전면 중단될 위기에 처한 가운데 정부가 이란산 원유 수송에 직접 지급보증을 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대(對)이란 제재 예외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EU 측과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협상이 결렬돼 원유 수입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에 대비해 ‘플랜 B’를 마련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가 국제 운송과 관련해 지급보증에 나선다면 2001년 미국 9·11테러로 항공기 운항위험이 고조되면서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에 지급보증을 선 이후 1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3일 “유조선 운항과 관련해 EU 측으로부터 보험중단 유예를 받기 위해 계속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협상이 결렬되는 상황에 대비해 정부가 재보험사를 대신해 지급보증을 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유수송 선박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 규모가 막대해 재보험에 들지 않으면 운항이 불가능하다. 선박, 원유의 손해배상 규모도 크지만 원유 유출로 인한 환경오염, 인명 피해에 대한 배상 규모가 수조 원에 이를 정도로 막대해 영국의 로이드 등 유럽 금융회사들이 재보험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또 이 관계자는 “아직까지 지급보증의 규모, 대상 등은 정해지지 않았으며 9·11테러 당시 정부가 항공사에 지급보증을 섰던 사례 등을 참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9·11테러 직후였던 2001년 10월 초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전쟁과 테러로 인한 ‘제3자 배상’을 위해 15억 달러씩 지급 보증하는 국가보증 동의안을 의결한 바 있다.
정부가 지급보증을 검토하는 것은 이란산 원유 수입이 완전히 중단될 경우 이란과 거래해온 2000여 개 한국 기업의 피해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 기업들은 이란에 72억 달러(약 8조5000억 원)어치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했다.
미국 국방수권법에 따른 대(對)이란 제재 때문에 이란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수출과 이란산 원유 수입에 대한 결제는 달러 대신 우리은행, 기업은행을 통해 개설된 원화계정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이란에 수출을 계속하려면 이 계정에 원화가 남아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수입량이 줄더라도 이란산 원유를 지속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한편 이란산 원유 수입 물량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2012년 1분기 한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 물량은 1772만9000배럴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3% 감소했다. 올들어 4월까지도 10.1% 감소한 수준이며 5월에도 감소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경제 부처의 한 관계자는 “조만간 미국 국무부가 한국을 국방수권법 제재 예외국으로 지정하면 EU의 태도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면서 “최후의 수단인 정부 지급보증이 현실화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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