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고 싶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 스포츠 경기나 공연처럼 멀리 있는 장면을 쌍안경으로 볼 때 그 모습을 바로 저장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소니의 ‘DEV-5’는 세계 최초로 개발된 디지털 레코딩 쌍안경이다. 다른 장비를 준비할 필요가 없이 쌍안경에서 보는 것을 그대로 초고해상(풀HD) 영상으로 촬영해 저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기자 집 인근의 북한산 근처를 돌며 제품을 사용해 봤다. 20배 줌 기능이 있어 수십 m 떨어진 사람의 얼굴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자동초점(AF) 기능도 유용하다. 기존 고급 쌍안경은 초점 맞추기가 만만치 않았는데 이 제품은 빠르게 피사체의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쌍안경을 들고 산기슭을 돌아다니다보니 십수 년 전 공동경비구역(JSA) 판문점에서 군 복무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훈련 또는 경계근무 중 쌍안경이나 적외선 나이트비전고글(NVG)을 자주 사용했는데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초점을 잡기도 어렵고 손이 약간만 떨려도 피사체를 제대로 보기 어려워 많은 훈련이 필요했다.
하지만 DEV-5는 소니 핸디캠에 들어있던 손떨림 보정 기술인 ‘뉴 광학식 스테디샷 액티브 모드’가 들어있어 줌으로 가장 가까이 당겨도 별로 흔들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영상이 찍혔다. 3차원(3D) 촬영도 가능하다. 이를 바로 TV와 연결해 보거나 무안경 뷰파인더로 확인할 수 있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내장돼 찍어놓은 영상들을 위치에 따라 분류하거나 편집할 수 있는 것도 편리한 기능이다.
쌍안경처럼 생겼는데 캠코더로 쓸 수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쓸모가 있어 보였다. 사진기자들은 인물 사진을 찍을 때 망원렌즈를 자주 사용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카메라를 바로 앞에 갖다 대면 어색한 표정을 짓기 때문에 멀리서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찍어야 자연스러운 표정을 담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DEV-5는 멀리 있는 피사체를 자연스럽게 촬영하는 데 유용해 보였다.
또한 콘서트 등 공연을 볼 때도 좋다. 대부분의 공연장이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쌍안경은 대부분 휴대하고 입장할 수 있다. 이 제품이 잘 알려지기 전까지는 공연을 몰래 촬영하는 데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거꾸로 이런 특성 때문에 몰래카메라로 사용돼 상대방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든다.
DEV-5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콤팩트형 디지털카메라 대용으로 쓰기에는 부피나 무게가 만만치 않다. 200만 원이 넘는 가격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소니는 이 제품을 자연이나 철새 등을 관찰하는 자연탐사용 또는 스포츠경기 관람용으로 주로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뭔가를 몰래 찍고 싶은 ‘음지’의 소비자들 사이에서 열광적 반응을 얻고 있다는 카메라 업계의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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