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출신 최고경영자(CEO)나 임원을 찾기 힘들던 금융계에 최근 ‘삼성 표’ 경영진이 부쩍 늘고 있다. 그간 산업계에는 삼성 계열사를 거친 경영진이 적지 않았지만 금융계에서는 삼성 출신이 드물었다.
동양증권은 지난달 25일 삼성증권 국제조사팀장 출신인 이승국 전 현대증권 사장을 신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1일 메리츠종금증권도 채권 전문가로 삼성증권 상무를 지낸 김용범 부사장을 공동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산은금융지주는 4월 옛 재정경제부 출신으로 삼성증권에서 IR 담당 부사장을 지낸 주우식 씨를 수석 부사장으로, 산은금융의 계열사인 KDB생명도 3월 신임 사장으로 삼성생명 인사팀장 출신인 조재홍 전 동부생명 사장을 영입했다. 지난해 11월 선임된 이남우 토러스투자증권 영업총괄대표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 출신이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CEO로 영입되기 전 2∼3년간 휴식기를 거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삼성화재 펀드운용부장, 삼성투자신탁 채권운용본부장, 삼성증권 캐피털마켓영업본부장 등 삼성 금융계열사를 두루 거친 김용범 사장은 2008년부터 약 3년간 야인 생활을 한 뒤 2011년 메리츠종금증권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되면서 금융계로 돌아왔다.
조재홍 KDB생명 사장도 2009년 중반 동부생명 사장에서 물러난 뒤 휴식기를 가졌다. 특히 KDB생명 사장 자리는 신한생명, 우리아비바생명 등 다른 금융지주 계열 보험사처럼 전직 은행 임원이 올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어서 조 사장 선임에 놀라는 이가 많았다. 산은금융 관계자는 “KDB생명 사장 면접을 본 후보 3명이 모두 삼성 금융계열사 임원 출신이었고, 공백기는 별로 문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금융계에서 삼성 출신 경영진이 늘어나는 추세와 관련해 실적 호조로 입증된 삼성의 경영시스템 ‘따라하기’로 풀이하고 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라는 위기관리 중시 문화, 임원이 될 때까지 받는 강도 높은 내부교육, 부정행위에 엄격한 내부 감사, 지연과 학연을 배제한 실력 위주 인사 등을 배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한 증권회사 임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몇몇 금융회사에서 각종 금융사고가 터진 뒤 ‘관리의 삼성’ 노하우를 이식하려는 필요성이 더 커졌다”며 “사회 각계에 방대하게 퍼져 있는 삼성의 전현직 인맥은 중요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다만, 증권 및 보험업계와 달리 은행권에서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삼성 출신 금융지주 회장이나 행장을 보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은행이 금융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조직 문화를 지닌 데다 삼성증권 사장을 지낸 황영기 전 우리금융 회장과 삼성화재 상무 출신인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이 신용부도스와프(CDS) 투자 실패 논란으로 지금까지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CEO를 뽑은 하나금융지주, 농협금융지주, 신한은행 등은 모두 내부인사를 승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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