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 바꿔 돌파하라”… 위기 극복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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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8일 03시 00분


삼성-현대차-LG-SK 총수 상반기 경영행보 살펴보니


“올해 세계경제는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고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선진 시장의 소비 위축은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고, 정보기술(IT) 산업은 어떤 분야보다 빠른 변화와 치열한 경쟁에 직면할 것이다.”(구본무 LG그룹 회장)

삼성, 현대·기아자동차, LG, SK 등 국내 4대 그룹 총수들은 올해 신년사에서 한목소리로 위기를 얘기했다. 이어 위기를 정의하고 전사적인 대응을 독려하며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이른바 ‘위기창조의 리더십’이다.

적극적인 투자와 고용, 동반성장 등을 일관되게 강조한 것도 공통된 특징이었다. 이건희 회장과 구본무 회장은 조직의 체질개선을 주문했고,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내실 다지기와 현장 경영으로 돌파구를 모색했다.

○ 이건희 삼성, “제2의 신(新)경영에 대비하라”

이건희 회장은 올해도 “정신을 안 차리면 금방 뒤진다”며 특유의 위기론으로 삼성을 이끌었다. 삼성이 7일 이 회장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그룹 핵심보직인 미래전략실장에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을 선임하며 위기 돌파를 위한 정면승부에 나선 것은 위기 속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2의 신경영’에 준하는 혁신을 하라는 이 회장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지난달 유럽과 일본을 4주간 방문하고 돌아와 “(상황이)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나빴다”고 밝힌 바 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이 회장이 ‘기존 틀을 깨고 미래를 직시하며 새로운 것을 생각하라’는 취지의 일관된 메시지를 보낸다”고 분석한다. 이 회장은 4월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새롭게 보고, 크게 보고, 앞으로 보고, 깊이 보라며 회의 때마다 똑같은 소리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출근시간을 평소보다 1시간 정도 앞당기는 ‘새벽 출근’과 임직원들과 점심을 같이하는 ‘오찬 경영’으로 경영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했다. 신년사에서는 ‘사람과 기술, 사회의 믿음과 사랑’을 위기대응의 경쟁력으로 제시했고,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방해 사건과 방위산업부품 품질 불량 문제가 불거지자 경영진을 강하게 질책했다. “5년, 10년 후를 내다보고 지역 전문가를 양성하라”거나 “여성 인력의 채용 비율을 높이라”고도 주문했다.

○ 정몽구 현대차, ‘선택과 집중’을 통한 내실 경영

정몽구 회장의 올해 행보는 ‘내실 다지기’와 ‘품질 경영’에 방점이 찍힌다. 그는 신년사에서 성장 둔화를 우려하며 내실 경영을 통한 위기 극복을 주문했다. 정 회장은 3월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올해 목표를 700만 대로 잡은 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라며 “당분간 성장에 드라이브를 걸기보다 급격한 생산량 증가로 불거질 수 있는 품질 문제에 더 신경을 쓰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글로벌 일류 기업을 향한 야심은 숨기지 않았다. ‘폴크스바겐을 언제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 장담은 못 한다”면서도 “어디 한번 두고 봅시다”라고 답했다. 5월 기아차의 첫 대형 럭셔리세단 ‘K9’ 출시 행사장에서는 “이 자리까지 오는 데 10년이 걸렸다”며 “K9이 품질 면에서 세계 최고”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구본무 LG의 혁신경영…“뼛속까지 변하라”

올해 구본무 회장의 발언에는 평소의 온화한 이미지와는 다른 날카로움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LG전자 등 주력 계열사가 부진한 실적을 내자 발언에 날이 선 것이다. 새해 인사 모임에서 “지금과는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고 주문했고,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전략회의에서는 “뼛속까지 바꾸겠다는 마음으로 끝을 보라”고 수위를 높였다. LG 관계자는 “구 회장이 올 들어 ‘체질 개선’ ‘실행 속도’ ‘시너지’를 일관되게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의지는 현장 경영의 변화로 나타났다. 구 회장은 올해 첫 현장 방문지로 연구소나 사업장이 아닌 LG전자 신제품 전시관을 택했다. “질 좋은 제품을 남보다 빨리 내놓아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4월에는 1995년 취임 후 처음으로 해외 연구개발(R&D) 인재 채용 행사인 LG테크노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직접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달에는 그룹 중장기 전략보고회의를 주재하며 하반기 경영전략 구상에 나섰다.

○ 최태원 SK,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

최태원 회장은 신년사에서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마부작침(磨斧作針)’의 화두를 내놓고 “담대하게 ‘우리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재계에서는 이를 검찰 수사로 뒤숭숭한 조직을 추스르고 하이닉스 인수와 글로벌 시장 개척 같은 경영 현안을 묵묵히 실행하겠다는 취지로 해석했다.

최 회장은 2월 SK하이닉스의 국내외 현장을 직접 방문하며 SK 특유의 ‘한솥밥 문화’ 전파에 나섰다. 이어 말레이시아(3월), 중국(4, 5월), 태국 및 터키(5, 6월) 등을 잇달아 방문하며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섰다.

지난달에는 계열사들의 위기 돌파 모범사례를 소개하는 ‘수펙스2’ 대회에 참석해 우수 사례를 시상하며 성장 정체로 침체된 조직 추스르기에 나섰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이) 최재원 부회장의 부재 속에서 해외시장 개척 같은 현안을 직접 챙기다 보니 입술이 부르터 귀국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고 말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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