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럽 17개국) 재정 위기가 일부 국가의 금융시스템 위기로 발전하고 글로벌 실물경제에도 충격을 주면서 시장의 관심이 다시 한 번 각국 정책 당국자의 ‘입’으로 쏠리고 있다. 당장의 파국을 막고 불안을 진정시킬 카드로는 정부의 부양책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긴급처방들은 순간적인 진통제 역할은 할지언정 근본적인 치료법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 경기부양 기대감 솔솔…효과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6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에서 “면밀히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며 “일부 집행이사는 금리 인하를 선호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이 발언이 향후 금리 인하에 대한 의지를 강력히 밝힌 것으로 풀이했다. 현재 ECB의 기준금리는 1.0%로 앞으로 추가 인하할 여지가 충분하다.
미국에선 각 지역의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이 일제히 경기부양책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나섰다. 존 윌리엄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연방준비제도(FED)는 미국 경기 둔화에 대비해 추가 부양책을 실시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데니스 록하트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T·장기 국채를 사들이고 단기 국채를 내다 팔아 금리 인하 효과를 노리는 조치)의 연장은 선택 가능한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지급준비율을 세 차례 내린 중국은 7일 기준금리를 2008년 12월 이후 3년 6개월 만에 0.25%포인트 전격 인하하는 등 성장률 둔화에 적극 대응하고 나섰다. 중국은 유로존 침체의 영향으로 2분기 성장률이 7%대 초반으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중국은 올 하반기에 소득세 기준 완화, 중소기업 감세 및 소비품 관세 인하 등 추가 경기 부양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달에 통화정책회의를 여는 인도도 4월에 이어 추가로 금리를 내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브라질은 작년 8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금리를 일곱 차례나 낮춰 사상 최저 수준(8.5%)까지 떨어뜨렸고 호주도 5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이 같은 각국의 동시다발적 움직임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정책 공조를 연상시킬 정도다.
하지만 이번엔 이 같은 수준의 정책 공조는 힘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더는 금리를 내릴 여지가 없고 각국의 가용 재정도 바닥이 난 상태다. 특히 위기의 진원지인 유럽은 그리스와 스페인의 구제 방법을 놓고 여전히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독일은 자국 경제가 아직 튼튼해 ECB 차원의 공격적인 금리 인하엔 반대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유로존을 해체하든지, 더 결속력 있는 재정동맹으로 가든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이런 부양책들로는 단기적인 효과밖에 기대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또 실제 각국이 금리 인하 등 부양책을 내놓을지, 언제 발표할지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 한국은 재정 동원한 부양카드 만지작
한국도 지금이 본격적인 경기부양 카드를 검토할 적기로 판단하고 있다. 2008년 때도 보여준 것처럼 경기 부양은 세계 주요국이 한꺼번에 공조해 움직여야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위기에 대비해 필요하다면 관계부처 간 공조를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당장 검토되는 것은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17일 그리스 총선에 따른 유로존 위기의 흐름이 추경 편성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론 요즘 고용지표가 좋은 만큼 일자리보다는 사회기반시설(SOC) 추가 건설, 수출기업 자금 지원 등이 검토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경기가 침체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만 가지고 추경 편성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경기침체, 대량실업 등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그럴 우려가 있을 때로 추경 요건을 제한하고 있다. 최근에 추경을 편성했던 2009년 초는 금융위기의 여파로 2008년 4분기 성장률이 직전 분기 대비 ―3.2%였는데 올해 1분기 성장률은 0.9%로 사정이 낫다. 김동연 재정부 2차관도 이날 “현재 시점에선 추경 편성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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