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은퇴’ ‘은퇴’ 하지만 제가 은퇴를 안 해봤는데 공감(共感)하기 쉽지 않죠. 이제 배워서라도 은퇴 고객들을 이해하려고요.”
금융업계에서 ‘은퇴’가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은퇴 관련 금융상품이나 가족 캠프 등 관련 서비스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막상 은퇴를 경험해보지 않은 일선 직원들이 은퇴 고객을 상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최근 금융회사 직원들 사이에서 노인에 대한 강좌나 체험학습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은퇴 고객들과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 데다 금융상품 이외에 은퇴와 연계된 서비스 개발 아이디어까지 얻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 금융권, 노년학 배우기 열풍
2일 오전 서울 광진구 자양동 건국대 스타시티 내 실버타운 ‘더 클래식’. 견학 참가자들은 수영장, 영화감상실 등 5성급 호텔 못지않은 시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잠시 후 월 생활비부터 입주자들의 계층과 성향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들이 쏟아졌다. 참가자들은 설명 하나하나 수첩에 꼼꼼히 적는가 하면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기도 했다.
이들은 퓨처모자이크연구소(FMI)에서 개설한 금융노년전문가(RFG) 과정에 참여하는 수강생으로 이날 실버타운을 포함해 송파노인종합복지관, 시립동부노인전문요양센터 등을 돌며 현장체험을 진행했다. RFG는 은퇴 후 재정문제 또는 사회와 가정에서 느끼는 정체성 혼란 등을 배우는 노년학 강좌의 일종이다. 국내에서는 퓨처모자이크연구소가 지난해 처음 도입했지만 이미 미국과 유럽 등 은퇴시장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돼 있다.
수강생들은 보험사 연구원부터 은행 프라이빗뱅킹(PB) 팀장, 증권사 자산관리컨설팅 부장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든다. 금융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퇴직연금’ ‘역모기지론’ 등 재무적인 요소는 기본이다. 하지만 은퇴 후 여가, 주거, 사회적 관계 등 ‘비재무적’인 요소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다. 이날 현장 체험에 함께한 오영필 우리투자증권 남청주지점 차장은 “은퇴 후 어떻게 살아가는지 직접 배우고 체험하니 은퇴 고객들을 대하는 데 있어 좀더 자신감이 생긴다”며 강좌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 ‘금융’과 ‘은퇴’ 융합 본격화
금융업계에 노년학 열풍이 불어닥친 데에는 치열해진 업계 간 경쟁도 한몫하고 있다. 본격적인 베이비부머의 은퇴를 시작으로 은퇴 시장이 급속히 커지자 금융회사들은 은퇴 관련 연구소를 신설하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당초 은퇴 준비 상품들을 쏟아내기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콘텐츠’를 통한 차별화에 더 신경 쓰고 있다. 노혜선 동양증권 PB지원팀 대리는 “증권사 은퇴 상품의 경우 이제 큰 차별성이 없다”며 “고객들을 만족시켜 줄 만한 새로운 콘텐츠를 찾으려면 은퇴 후 삶에 대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첫걸음이 직원들에 대한 은퇴 관련 교육이다. 은퇴를 경험하지 못한 직원들이 노년층 고객과 상대하려면 그들과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지식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실제 국민은행과 우리투자증권 등은 은퇴 관련 부서뿐 아니라 전 직원을 상대로 노년학 관련 강좌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은 “이제 은퇴와 관련해 금융과 주거, 건강, 커뮤니티 등을 한데 아우르는 ‘스토리’를 입히는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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