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를 줄만 알았던 국제유가가 4월 중순부터 내림세로 돌아섰습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국내 기름값은 기대만큼 떨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국제유가가 오를 때는 무섭게 오르던 기름값이 떨어질 때는 천천히, 조금씩 내리는 이유가 뭘까요? 》
소비자시민모임 석유감시단이 올해 4, 5월 국제 휘발유 가격과 국내 판매가의 차이를 분석한 자료를 보죠. 이 단체는 정유회사들이 국내 주유소에 휘발유를 공급할 때 기준으로 삼는 싱가포르 현물시장의 국제 휘발유 가격과 국내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을 비교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국제 휘발유 가격은 4월 셋째 주부터 5월 넷째 주까지 96.97원 떨어졌지만 같은 기간 국내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39.01원 하락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를 근거로 석유감시단은 국내 정유회사들이 국제 휘발유 가격의 하락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또 정유회사뿐 아니라 주유소들도 지속적으로 판매가를 내린 곳들이 있는가 하면 기존 가격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는 ‘배짱 주유소’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국제유가 하락세가 국내 기름값에 제때 반영되지 않아 해외에서 원유를 수입하는 국내 정유사 가격결정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그동안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정유사가 국제시세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아 추가적인 이익을 취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거죠.
국내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휘발유는 정유회사들이 중동산 원유를 수입해 정제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유회사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에 따라 휘발유 공급가를 결정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실제 일본은 국내의 수급 상황에 따라 기름값을 정합니다. 정부도 정유사가 국제가격이 오를 때는 더 올리고, 가격이 내릴 때는 조금만 내리는 ‘가격의 비대칭’성을 다각도로 조사했지만 명확한 결론을 내지는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 정유회사들은 국내 기름값이 국제가격보다 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렇게 느낄 뿐이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1, 2주의 격차를 두고 국내 주유소 공급가격을 정하는데 여기에 당시의 환율을 고려하고 정부가 부과하는 유류세 등을 포함시키면 국내외 가격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국제시세를 곧바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원유 운송기간과 환율, 국제가와 국내가의 비교 시점 등의 차이로 일부 오차가 나는 것”이라고 반박합니다.
일부 석유업계 관계자들은 국제유가가 오름세일 때 정유회사들이 실제로 오른 만큼 돈을 더 주고 원유를 사오는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거래규모, 공급처와의 관계 등에 따라 국제시세보다 싸게 살 가능성도 충분히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단골 가게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사면 할인을 받는 것처럼 말이지요. 정유회사들이 원유 수입가를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국제유가와 국내 제품가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정유회사 마진을 알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런 의구심에 대해 정유회사들은 억울하다고 항변합니다. 원유를 휘발유로 정제한 뒤 팔아 남기는 이익이 매우 적다는 겁니다. 실제 국내 4대 정유사의 휘발유 부문의 영업이익률은 2% 수준에 그칩니다. 이익의 상당부분은 휘발유를 팔아 번 돈이 아니라 윤활기유 같은 고(高)부가가치 제품을 수출해 얻는 이익입니다.
정부는 국내 기름값을 떨어뜨리기 위해 여러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휘발유 값이 전국 평균보다 L당 100원가량 싼 알뜰주유소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또 국내 수요와 공급에 따라 기름값을 결정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전자상거래 시장을 열었고, 일선 주유소에서 상대적으로 값이 싼 다른 정유사의 제품을 섞어 팔 수 있도록 혼합판매도 허용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효과는 미미합니다. 결국 소비자로서는 주변에서 기름값이 싼 주유소를 꼼꼼히 확인해 이용하는 게 최선입니다. 한국석유공사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오피넷’을 이용하면 가격 경쟁력이 있는 주유소의 위치뿐 아니라 세차장 등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으니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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