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첩첩산중(疊疊山中)이다.’ 산이 겹겹이 쌓여 있는 깊은 산골을 이르거나 상황의 어려움이 심해지거나 문제가 꼬일 대로 꼬였을 때를 의미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 부동산시장의 특징을 설명하는 말로 첩첩산중을 꼽았다. 동아일보 부동산팀이 관련 전문가 10인에게 설문한 결과에서다.》 ○ 구매심리 약화가 발목을 잡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정부가 시장이 살아나길 기대하고 서울 강남·서초·송파 등 3개 구에 대한 규제 완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5·10대책까지 발표했는데도 상황이 오히려 악화되고 있으니 첩첩산중이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승우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풀어가야 할 과제가 산적해 요소요소마다 시장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다”라며 상반기 시장 상황을 요약했다.
이 밖에도 ‘지지부진(遲遲不進)’이나 ‘악전고투(惡戰苦鬪)’로 갑갑한 시장 상황을 표현한 전문가들도 있었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꽉 막혔다기보다는 전반적으로 거래량이 침체돼 있고 유럽 재정위기 등이 발목을 잡고 있는 지지부진한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안명숙 우리은행 PB영업전략부 팀장은 “정부는 시장 부양을 위해 대책을 내놨으나 효과가 없고, 수요자는 아파트를 팔고 싶어도 거래가 안 되고, 건설사는 미분양을 해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다들 어렵고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반기 부동산시장이 이렇듯 침체된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구매 심리 약화’와 ‘글로벌 경기불안’을 꼽았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는 “주택이 오르지 않을 거란 생각 때문에 투자심리가 풀리지 않고 있다”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등을 푼다고 해도 거래가 활성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희순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가계에서 돈을 쓰길 꺼려서 매매 위축이 일어나는 것, 정책을 내놔도 아무 효과가 없는 것 등 모든 문제의 근원은 결국 경기 침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수익형 부동산상품의 독주
전문가들은 올해 주택시장의 가장 큰 이슈로는 매매실종(거래위축), 강남 재건축 아파트 급락, 5·10 부동산 대책 등을 꼽았다. 하지만 ‘이슈가 없었던 게 이슈’란 냉소적인 의견을 내놓은 전문가들도 있었다.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이슈도 없고 대책의 영향도 없는 지루한 조정장이었다”고 평가했다. 노 연구원 역시 “경기 영향이 너무 강하게 작용해서 시장을 흔들 만한 이슈 자체가 없었다”고 말했다.
가장 유망했던 투자처에 대해서는 오피스텔을 비롯한 수익형 부동산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팀장은 “오피스텔이 어느새 중산층의 로망이 돼 버렸다”며 “강남 주부들 사이에선 아직 오피스텔 하나 없느냐는 이야기가 계속 나올 정도로 유행이 됐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공급과잉인 데다 수익률도 떨어졌지만 오피스텔 외엔 딱히 투자할 곳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형 빌딩을 꼽은 전문가들도 있었다. 안 팀장은 “불특정 다수가 투자할 만한 자산이 아니긴 하지만 수익률로만 보면 상반기에 가장 유망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부동산 자산 자체의 투자 가치가 전반적으로 하락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 교수는 “은행 이자보다는 높은 상품이 있어야 하는데 소형 아파트든 오피스텔이나 상가든 이미 포화돼 진부한 투자처”라고 평가했다. ○ 당분간 불투명한 장세 이어질 듯
그렇다면 이들이 보는 하반기 주택시장의 전망은 어떨까. 대체적으로 “현 상태의 지지부진한 답보를 지속하거나 상반기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다. 당분간 세계 경제의 위기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금융규제 완화 등을 함부로 내놓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을 만한 것은 다 내놓은 상태”라며 “주택시장이 독립적으로 움직인다기보다는 해외 문제나 국내 경기 등 거시 경제에 종속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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