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경제관료 등으로 일하면서 재정 건전성을 강조했던 일부 여야 정치인들이 국회의원이 된 후에는 재정 부담이 큰 복지정책을 앞장서서 추진하거나 적극 옹호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제부처 등에서는 “합리적 판단을 통해 ‘건전 재정 지킴이’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오히려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새누리당 민생경제종합상황실 회의에서 안종범 의원은 전날 ‘0∼2세 무상보육 축소’ 방침을 밝힌 기획재정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이날 안 의원은 회의에 참석한 김동연 재정부 2차관에게 “(무상보육이) 포퓰리즘 정책인 듯 매도되는데, 그게 아니라는 명확한 증거나 근거를 제시하면 좋겠다”며 “무상보육은 당이 재원을 철저히 준비한 만큼 절대로 포퓰리즘이 아니다. 보육은 모든 국민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선별적이 아닌 보편적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성걸 의원도 “(김 차관의 발언이) 정부 입장인지, 한 부처의 개별 차관의 입장인지 파악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초선인 이 두 의원은 국회 입성 전까지 건전 재정을 주창한 대표적인 재정 전문가들이었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한 안 의원은 지난해 한국재정학회 회장 시절 재정부의 용역을 받아 집필한 ‘장기복지 재정계획’ 보고서에서 “지금의 복지지출이 계속되면 2050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8.7%로 남유럽과 같은 재정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안 의원이 당시 만든 보고서는 재정부가 정치권의 무상복지 주장을 반박하는 데 중요한 근거자료로 활용돼 왔다. 안 의원은 또 지난해 5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금과 복지 관련 정책은 한 번 정하면 영구화되는 경향이 강하다”며 “정부 경제팀이 정치권의 무분별한 요구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류 의원은 1월 공직에서 사퇴할 때까지 이날 질타한 김 차관이 맡고 있는 재정부 2차관으로 예산 부문을 총괄했다. 류 의원은 지난해 9월 정부 예산 총책임자로 올해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서민과 중산층 위주로 꼭 필요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둬 복지 포퓰리즘과 차별화되도록 하겠다”며 정치권과 각을 세웠다. 특히 이날 문제가 된 0∼2세 전면 무상보육은 지난해 국회 예산 편성 과정에서 막판에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소위원회에서 급하게 포함된 정책으로 재정부는 이를 마지막까지 반대한 바 있다.
이날 민주통합당 고위정책회의에서 정부의 무상보육 정책 재검토 움직임을 질타한 이용섭 정책위의장 역시 2001년 재정부의 전신인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시절 균형재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이 정책위의장은 “정책 일관성을 훼손한 졸속행정의 표본일 뿐 아니라 대국민 약속을 위반한 국민 기만행위”라며 정부의 0∼2세 무상복지 선별 지원을 비판했다.
4·11총선 당시 대표적 포퓰리즘 정책으로 꼽히는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공약 마련에 앞장섰던 김진표 의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으로 일하던 2005년 “정부 재정을 감안하면 국립대도 서서히 사립대 수준으로 등록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재정부 관계자는 “문외한도 아니고 누구보다 건전한 재정의 중요성과 예산 정책의 민감성을 잘 아는 경제관료 출신이나 경제 전문가들이 국회에 들어가 이런 식으로 의견을 바꾸는 걸 보면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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