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국민소득이 1700달러인 케냐에서 인구의 절반이 수백 달러씩 하는 휴대전화를 들고 다녀요.”
올해 초 아프리카를 방문한 한국무역보험공사(K-sure)의 이경철 중소중견기업사업부 팀장은 케냐의 전체인구 4000여만 명 중 2300여만 명이 수개월치 월급에 해당하는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현지 기업들이 휴대전화로 구직자들에게 연락을 해서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팀장은 “국내 중소기업들이 휴대전화 액세서리 등을 팔면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sure의 직원들은 지난해 말부터 3차례 아프리카 시장을 조사하면서 잠재된 구매 수요를 보고 무릎을 쳤다. 한국의 주요 수출국인 미국 유럽의 경기침체가 계속되자 신(新)시장인 아프리카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이 회사는 국내 수출기업이 물건값을 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보험을 제공하는 게 주된 업무다.
○ 자연환경과 문화가 새로운 수요 창출
K-sure의 직원들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주로 바닥에서 잠을 자거나 나무그늘에서 휴식을 취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부분 침대에서 자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국내 업체로부터 합성수지를 공급받아 탄자니아에서 침대 매트리스를 생산하는 아프리카 업체의 한 사장은 “벌레가 많아 사람들이 바닥에서 자는 것을 싫어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침대에 들어가는 스프링 매트리스를 생산할 기술력이 없어 화학원료를 부풀려 스펀지 형태로 매트리스를 만들고 있었다. 현장을 둘러봤던 김기만 무역사업부 부장은 “기술력이 있는 한국기업이 현지에서 적정가격의 침대를 만들어 공급하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 사정이 여의치 않아 주민들이 콜라와 같은 탄산음료를 선호하는 것도 관련 사업이 호황을 누릴 수 있는 배경이다. 독특한 아프리카의 문화도 제품의 특성을 결정짓고 있다. 가령 아프리카인들은 좋은 오디오의 조건으로 얼마나 볼륨이 높은가를 가장 중요시한다. 음향기기가 흔하지 않아 오디오가 있다는 것을 과시할 방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음악을 크게 틀면 온 동네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오디오를 가진 것을 자랑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 한국에 대한 호감도 높아
경영학계에서는 아프리카와 같은 국가들을 BOP(Bottom of Pyramid·피라미드 밑바닥) 시장으로 분류하고 있다. BOP란 통상 1인당 연간소득이 3000달러 이하인 저소득층을 뜻한다. 그들의 구매력은 낮지만 세계 인구의 70%를 차지하며 전체 시장규모는 5조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저축이나 투자보다는 현재 생활을 위한 소비성향이 높아 기업들에는 박리다매를 통해 큰 수익을 올릴 기회를 제공한다.
김 부장은 BOP 시장인 아프리카에서 한국의 대중문화를 이용한 마케팅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탄자니아에서 택시 운전사가 국내의 걸그룹인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노래 ‘아브라카다브라’를 따라 부르는 것을 보고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을 이용한 마케팅이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미 국내 일부 대기업이 이런 점을 간파하고 아프리카 전용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아프리카의 전력사정이 안 좋은 점에 착안해 정전에도 몇 시간 이상 냉장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냉장고를 판매하고 있다. LG전자 역시 태양열로 충전할 수 있는 노트북을 판매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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