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예상하지 못할 변화들이 나타날 것이다. 동종에서 이종 경쟁으로, 기업 간에서 기업군 간의 경쟁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월 신년사를 통해 밝힌 생각이다. 이 회장의 생각처럼 전통적인 기업 간 경쟁구도는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최고 강자가 2년여 만에 주저앉았고,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기업들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그 사이 삼성그룹은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언제든 그 위치에서 내려올 수 있다는 게 이 회장의 생각이다.
유럽의 재정위기와 미국의 경기침체도 삼성그룹에 위협이 되고 있다. 이 회장은 최근 유럽 출장을 다녀온 뒤에도 “(유럽의 경제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좀더 나빴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은 구성원들에게 1993년 이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하며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외쳤던 것 이상의 혁신에 나서고 있다.
혁신의 키워드는 연구개발(R&D)이다. 삼성그룹은 올해 47조8000억 원의 투자금액 중 13조6000억 원을 R&D에 투입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10년 뒤에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신수종 사업을 발굴하고, 경쟁기업들과의 격차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계열사들도 이 같은 인식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R&D 투자와 특허관리의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기술과 특허 경쟁에서 한발 더 앞서가기 위한 행보의 일환이다. 권오현 대표이사 부회장은 지난달 열린 하반기 글로벌 전략협의회에서 “지속적인 연구개발 활동을 위한 기술 리더십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매출액의 약 6.3%인 10조3100억 원을 R&D 분야에 투자했으며, 올해도 그 이상으로 금액을 늘릴 계획이다.
인수합병에도 적극적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 미국의 반도체 개발사인 그란디스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주 영국의 반도체 회사인 CSR(케임브리지 실리콘 라디오)의 모바일 부문까지 1년 새 5건의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내실을 다지는 활동도 진행 중이다. 현재 경기 수원시 디지털시티에는 R5 연구센터를 짓고 있다. 센터가 준공되는 2013년이면 이곳은 약 2만3000명이 상주하는 글로벌 연구개발의 메카로 거듭나게 된다.
이달 초 새로 법인을 설립한 삼성디스플레이도 R&D 투자에 힘을 쏟고 있다. 이 회사는 삼성전자의 액정표시장치(LCD)사업부와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소니와 합작법인이던 S-LCD가 합병된 세계 최대 규모의 디스플레이 전문 기업이다.
제일모직은 올해 ‘최고의 효율과 성과를 내는 강한 기업’을 목표로 삼고 케미컬, 전자재료 등 사업부별로 특화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 회사는 6월 미국의 명문 대학을 돌며 채용설명회를 열고 첨단소재 사업의 해외 우수 석박사급 인재 유치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삼성SDI는 2차전지와 태양광에 무게중심을 둔 친환경 전자화학 융·복합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R&D에 집중할 계획이다. 삼성중공업은 고부가가치 선박과 해양 설비에 특화된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고품질의 제품을 내놓기 위해 R&D에 힘을 쏟고 있다. 삼성전기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의 모바일 기기에 들어가는 부품 개발에 R&D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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