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를 시작한 지)사나흘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이 있었는지 단정적으로 말씀드리기 곤란하다.”(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
“담합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김석동 금융위원장)
20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CD 금리 담합이 있었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대한 김동수 공정위원장과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답변은 CD 금리 담합 의혹을 보는 두 정부 부처의 시각 차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담합 여부를 놓고 정부 부처 간에 ‘진실 공방’이 벌어지다시피 하는 상황을 지켜보는 금융권과 국민은 답답하기만 하다.
더구나 300조 원이 넘는 각종 대출의 이자가 연동되는 CD 금리가 ‘좀비 금리’가 되도록 방치하는 데 금융당국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에 금융권과 국민은 답답함을 넘어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 시장과 동떨어져서 움직이는 CD 금리를 손질할 만한 계기가 최근 몇 달 사이에 3차례나 있었지만 모두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 3번 수정 기회 모두 놓쳐
첫 번째 기회는 지난해 말 미국과 영국 당국이 바클레이스가 리보(런던은행 간 금리)를 조작한 혐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을 때였다. 리보 금리 결정방식은 국내 CD 금리 산정 방식과 비슷하고 지난해 말에는 CD 금리가 시장 금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본격적으로 나올 때여서 점검해볼 만도 했지만 금융당국은 별다른 문제인식 없이 그냥 넘어갔다.
리보 금리는 20개 대형은행이 제출한 은행 간 차입 금리로 영국은행연합회(BBA)가 수집해 최고 및 최저 금리를 제외하고 평균치를 낸다. CD 금리 역시 국내 7개 시중은행이 발행한 것을 10개 증권사가 평가해 이를 금융투자협회에 제출하면 최고 및 최저 호가를 제외한 8개 금리의 평균으로 고시한다.
지난해 말에는 단기물인 CD 금리가 장기물인 국고채 금리보다 떨어지는 역전 현상이 4개월 이상 지속되던 때였다. 채권은 만기가 길어질수록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장기물이 단기물보다 금리가 높은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난해 8월 9일부터 CD 금리가 국고채 금리보다 높게 유지됐다.
이런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은 3월 14일까지 219일간 지속됐고 20여 일간 휴지기에 이어 4월 6일∼7월 20일 106일간 다시 반복됐다. 오창섭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위원은 “금리 역전의 가장 큰 요인은 CD 금리가 시세 금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국고채보다 뒤늦게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두 번째 수정 기회는 올해 4월 9일부터 7월 11일까지 CD 금리가 3.54%에서 요지부동이었던 시기였다. 이 기간 만기가 비슷한 은행채 3개월물(AAA) 금리는 6월에는 3.38∼3.34%에서 움직이다 7월 6일 3.31%로 하락했다.
한국은행의 기준 금리 인하 이후에는 3%대 아래로 내려왔다. 기준 금리가 고정돼 있기는 했지만 CD 금리가 한 달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면 분명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판단해야 했지만 금융 당국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세 번째는 리보 조작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을 때였다. 리보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던 영국 바클레이스가 4억5000만 달러의 벌금을 내기로 미국과 영국 당국과 합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시점이 지난달 28일이었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리보 조작 사건이 전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했지만 국내 금융 당국은 CD 금리의 이상 유무를 챙기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은 리보 조작 사태가 생긴 이후 권혁세 금감원장의 지시로 제도적인 측면에서 CD 금리에 문제가 없는지 알아보고 있었다고 밝혔지만 금융시장에서는 ‘면피성 해명’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CD 금리를 대체할 단기 지표금리를 마련하기 위한 태스크포스(FT)를 6월에 구성한 이후 한 번도 회의를 하지 않다가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한 이틀 뒤인 19일에서야 뒤늦게 회의를 가졌다. CD 금리 왜곡에 대한 지적이 높았지만 “대체 금리를 찾기 힘들다”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가 공정위가 조사에 나선 이후에야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선 셈이다.
○ CD 금리 왜곡에 가계금리 차별
CD 금리가 지표 금리로서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금융 당국이 2009년 12월 은행권 예대율(예수금 대비 대출금 비율) 규제를 발표하면서 CD를 예금에서 제외한 게 계기였다.
CD가 주요 자금조달 창구였던 시중은행은 “CD 발행 잔액을 예금 잔액에 편입시켜 달라”고 당국에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은행은 CD 대신 정기예금을 확대하는 쪽으로 자금조달 방식을 선회했고 이후 은행이 시장에서 발행하는 CD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2009년 말 100조 원에 이르던 CD 발행 잔액은 지난해부터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해 올 6월 말 현재 27조 원으로 급감했다. 2010년까지 매달 9조∼10조 원씩 거래됐던 CD는 올해 들어서는 월 평균 발행액이 1조 원을 겨우 넘는 수준으로 축소됐다. 7월 현재 신한, 우리, 하나, 국민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CD 발행 잔액은 ‘0원’이다. CD 유통물량이 줄어들면서 CD 금리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좀비 금리’로 전락했다.
전체 은행권 대출에서 CD 금리 연동 대출이 3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CD 금리가 지표 금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면서 가계금리가 차별을 받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시중 금리 하락으로 기업대출 금리는 큰 폭으로 내려갔지만 가계대출 금리는 오히려 올랐기 때문이다.
22일 금융권 및 한국은행에 따르면 시중 금리가 고점을 찍었던 2011년 5월 5.98%였던 신규 기업대출 금리는 올해 5월 5.74%로 떨어졌다. 하락폭은 0.24%포인트나 된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금리(신규 취급액 기준)는 5.46%에서 5.51%로 뛰어올랐다. 가계대출 금리에 시중 금리의 인하 추세가 전혀 반영되지 못한 것이다.
기업대출 금리는 대부분 금융채 등에 연동돼 시장 금리를 제대로 반영한다. 금융채가 이 기간 0.18%포인트, 회사채가 0.47%포인트 각각 떨어졌다. 반면 CD 금리는 이 기간 3.59%에서 3.54%로 거의 움직이지 않은 데다 대출규제책까지 시행되자 가계대출 금리는 오히려 올랐다. 가계대출 중 CD 금리 연동 대출이 절반에 육박한다. 결국 은행 대출금리가 강한 자(기업)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가계)에게 강한 왜곡된 구조를 낳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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