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영 신용보증기금 서울디지털지점 차장은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 신용보증을 신청한 중소기업을 실사할 때마다 장부에 드러난 수치 너머의 것을 보려고 노력한다.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울 땐 특히 그렇다. 은행에 낼 보증서를 얻기 위해 부실을 최대한 감추는 기업이 적지 않아서다.
실사 현장에서 만난 사장들의 구두와 차종은 물론이고 옷차림과 사무실 인테리어까지 눈여겨보는 건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규모에 비해 사장의 씀씀이가 너무 크면 일단 내실 있는 경영을 하는 회사로 보지 않는다. 다른 신보 관계자는 “최근 방문한 C사는 초기자본 10억 원 중 사무실 인테리어에만 2억 원 이상을 쏟아 부어 보증실사를 더 엄격하게 진행했다”고 귀띔했다.
최근 경기 악화로 운전자금조차 부족해 신용보증을 신청하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다. 신용보증이란 은행에 담보를 제공할 능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을 위해 신보 같은 공공기관이 일종의 빚보증을 서는 것이다. 만약 보증을 얻어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이 부도를 내면 신용보증기관이 대신 빚을 물어준다.
정부는 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올해 신용보증 잔액을 지난해보다 6000억 원 늘린 45조7000억 원으로 책정했고 올 상반기(1∼6월)에 신용보증 잔액의 69%를 앞당겨 집행했다. 하지만 극심한 경기침체로 신보 대출을 연체하는 중소기업이 늘면서 연체율이 2010년 4.68%에서 지난해 4.92%로, 올 6월 4.97%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 7월 신보의 각 지사에는 “중고차 매매업의 부도율이 높아지고 있으니 해당 업종에 보증을 내줄 때는 신중을 기하라”는 본사 지침이 내려가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장에선 부실기업을 솎아내려는 신보 직원들의 눈길이 날카로워졌다. 지난달 30일 서울 구로구 가산동 가산디지털단지. 박태영 차장은 전자센서 유통업체인 아트에프에이 강문선 대표를 만나 이 회사가 거래하는 주요 업체의 신용도와 매출액을 꼼꼼히 들여다봤다. 외상거래 때 담보를 제공하기 위해 신용보증을 신청한 강 대표보다 거래처에 더 신경을 쓰는 듯했다.
거래 상대방의 상태까지 점검하는 것은 경기침체로 납품대금이 밀리면서 멀쩡한 중소기업이 흑자 도산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그는 “2, 3차 협력사로 내려갈수록 어음 만기가 길어져 심각한 자금난을 겪기도 한다”고 전했다.
보증실사 때 신청 기업의 재무제표는 물론이고 법인통장을 떼보는 건 기본이다. 이날 박 차장도 아트에프에이의 법인통장을 보면서 월급과 공과금이 제때 지급됐는지 확인했다. 직원 월급이 자주 밀리는 기업치고 부실하지 않은 곳이 드물기 때문이다.
수년 치 결산 재무제표를 뽑아 똑같은 매출채권 항목이 반복되는지도 확인했다. 신보 관계자는 “같은 거래처의 매출채권이 1년 이상 남아 있으면 결국 돈을 떼인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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