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애플 간 특허 소송의 승패는 크게 두 가지 쟁점에서 갈렸다. 바로 삼성전자의 통신표준특허를 애플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지와 삼성이 애플의 독창적 디자인을 모방했는지가 판결의 포인트였다.
먼저 재판부는 특히 삼성전자가 통신표준기술의 ‘프랜드(FRAND) 선언’을 위반했는지를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프랜드 선언은 표준 특허는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제공된다는 뜻으로 사용료를 내면 특허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한 규약이다. 이 때문에 애플이 삼성전자의 통신표준 특허를 사용한 것은 명백했지만 애플이 책임을 피해 갈 여지가 생겼다. 지난해 10월 네덜란드 법원도 삼성이 1988년 프랜드 선언을 한 사실을 근거로 애플과 아이패드 판매를 중지해 달라는 삼성의 주장을 기각했다.
이날 재판부는 삼성전자가 프랜드 선언을 했더라도 애플이 라이선스 계약 요구 없이 무단으로 특허를 사용했다면 침해를 금지해 달라고 요구할 권한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몇 차례 진행된 협상에서 애플이 삼성 표준특허의 가치를 매우 저평가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애플은 표준특허에 대한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다가 소송 과정을 거친 뒤 사용료를 내려는 의사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애플이 집중적으로 제기한 디자인 특허 침해 주장에 대해서도 법원은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애플은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 등이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의 제품 외형 △아이콘 디자인과 배열 △메모 아이콘 모양 △전화 아이콘 모양 △양쪽·한쪽 책 넘김 등 애플의 독창적 디자인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두 제품의 외형은 전체적인 심미감이 다르다”고 판단했다. 또 “일부 디자인은 애플보다 먼저 제작된 다른 제품들에서도 볼 수 있어 신규성과 창작성이 떨어진다”며 “삼성이 이전부터 사용하던 아이콘 디자인에서 쉽게 창작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판단했다.
삼성전자가 애플의 특허를 침해한 것으로 법원이 인정한 것은 ‘바운스 백’ 특허 1개뿐이다. 이 특허는 시판 중인 갤럭시S3 시리즈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애플이 △밀어 쓰는 잠금해제 기능 △아이콘 재구성 △휴리스틱스 기술을 삼성전자가 침해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신규성과 진보성이 떨어지거나 기존 기술로도 모두 만들 수 있는 기술”이라며 기각했다.
애플이 해외에서 진행 중인 소송에서도 삼성전자의 디자인 특허 침해를 집중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는 판결 취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계획이다. 특히 지난달 영국법원도 애플의 디자인 특허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판결한 점과 궤를 같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판결이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양사 간 소송 결과에도 영향을 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스마트폰 시장이고 애플의 안방이어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이번 판결이 미국 법원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구체적으로 예상하기 어렵다. 이 재판 배심원들은 판사의 명령에 따라 관련 보도를 보지 못하게 돼 있다. 형식적으로는 한국 법원의 판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외신을 통해 판결 결과를 전해 듣는다고 해도 평결에 유리하게 작용할지 그 반대일지 예단하기 어렵다.
한국과 미국의 법체계도 달라 직접적인 비교가 어렵다. 미국 소송의 핵심 쟁점은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 특허’와 ‘트레이드 드레스(제품이 가진 색채, 모양 등 고유의 이미지)’를 침해했느냐 여부다. 애플의 통신표준 특허 침해에서 중요한 쟁점인 ‘프랜드 선언’ 위반도 한국과 미국 법원의 해석이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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