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직원들이 주요 주주의 계좌를 불법 열람했다는 점을 금융감독원이 확인하면서 신한은행이 계좌를 불법적으로 들여다보게 된 배경에 궁금증이 일고 있다. 국내 최고 은행의 하나로 꼽히는 신한은행에서 단순한 고객도 아닌 사외이사를 지낸 주주의 계좌를 열어보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열람 사실이 ‘신한사태’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면서 금감원의 조사 결과에 따라 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다. ‘신한사태’는 2010년 9월 2일 신한은행이 신상훈 당시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촉발됐다. 은행이 전 행장이자 지주회사 최고경영자(CEO)를 고소하는 일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 불법 열람에 몇 명이 가세했나
신한사태는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과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이 신 전 사장을 몰아붙이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특히 신 전 사장에 대한 고소는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은행감사위원회 보고나 금감원에 대한 조사 의뢰 등 사전 절차도 밟지 않았다.
고소는 전격적으로 이뤄졌지만 고소를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던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나중에 횡령 혐의로 기소된 이 전 행장의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이 전 행장은 2010년 7월부터 비서실과 여신관리부, 경영감사부의 일부 직원을 동원해 신 전 사장 관련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한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당시는 라 전 회장과 이 전 행장 그리고 신 전 사장 사이의 대립이 극한적으로 치달았다. 이 때문에 이 전 행장 측이 신 전 사장의 ‘약점’을 확보하기 위해 양용웅 재일한국인본국투자협회장 주변뿐만 아니라 더 많은 ‘친신상훈’ 쪽 인사들의 계좌를 열어봤을 개연성이 있다고 은행권에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이 10월 신한은행 종합검사에 착수하면 이 부분에 대한 조사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계좌를 열람하면 전산기록이 남기 때문에 조사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계좌 불법 열람과 신한사태가 겹친 것으로 추정돼 금감원의 검사 결과에 따라서는 강도 높은 징계가 뒤따를 수도 있다. 금감원은 지인들의 부탁으로 고객 계좌를 열람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중징계 처분을 내리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은 ‘불순한 의도’를 갖고 계좌를 열람했을 개연성이 짙어 단순 열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 금융당국, 조사 안 하나 못 하나
신한금융 사외이사를 지낸 양 회장이 자신과 가족의 계좌를 신한은행에서 무단 열람했다며 금감원에 진정을 제기한 시점은 약 2년 전인 2010년 9월 30일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양 회장은 진정과 관련된 속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양 회장 계좌의 열람 로그 기록만 확인하면 되는 일을 금감원은 2년간 처리하지 않은 셈이다.
지금까지 금감원이 양 회장의 진정에 대해 회신한 내용은 “신한은행에 확인한 결과 내부 검사를 진행했지만 전 행장과 관련한 형사소송이 제기 중이어서 현재까지 검사 절차가 완료되지 않았다고 알려왔다”는 게 전부다. 이에 대해 양 회장을 대리하는 민병훈 변호사는 “계좌를 열람한 사실이 없으면 없다고 대답하면 되는데 답을 못 하는 건 열람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은행에서 시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검사권을 가진 금감원이 계좌 열람기록만 간단히 확인하면 되는 사안에 대해 은행이 못 알려주니 우리도 알 수가 없다는 식으로 대답하는 것은 금감원의 본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구나 금감원은 양 회장의 진정서를 접수한 직후인 2010년 11월 신한은행에 대한 종합 검사에 착수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양 회장이 계속 문제를 제기하자 뒤늦게 조사에 나서 ‘직원 여러 명’이 양 회장과 가족의 계좌를 열람한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도 정작 진정인인 양 회장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특히 금감원이 은행에서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을 인지하고서도 진정이 들어온 내용 외에 다른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왜 불법 열람을 했는지 등에 대해 즉시 조사에 나서지 않은 점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은행권에서는 금감원이 신한금융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추측과 간단한 조사로 끝날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선뜻 검사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10월에 종합검사가 예정돼 있기 때문에 그때 (조사)하려고 한다”는 답변만 내놓았다. 하지만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파악돼 조사할 게 많지 않은 사안인데도 종합 검사 때까지 미루는 이유에 대해서는 명쾌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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