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말이와 부추전은 500원이고 돈가스는 1000원이군요…대단합니다. 5000원 정도로 이렇게 푸짐한 뷔페식 점심을 먹을 수도 있다니.”
8월 16일 목요일 점심시간.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 장터는 순식간에 직장인들의 떠들썩한 구내식당으로 변신했다. 하얀색 와이셔츠를 차려입은 직장인 부대가 삼삼오오 도시락 식기와 통인시장 전용화폐인 ‘엽전’을 손에 쥔 채 식도락 삼매경에 빠진 것.
청계천로에 있는 예금보험공사 직원들은 매주 목요일이면 회사 셔틀버스를 타고 청와대 인근의 통인시장으로 ‘점심 마실’을 간다. 자매결연을 한 통인시장에서 ‘전통시장 가는 날 행사’도 갖고, 이곳 명물인 ‘도시락 카페’에서 점심식사까지 해결하기 위해서다. 산책을 겸해 도보로도 2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지만 공사 측에서는 특별히 매주 목요일 점심시간에 회사버스를 제공할 정도로 열성이다. 직원들은 소풍 가는 마음으로 회사를 출발해 도시락 카페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인근 ‘서촌(西村) 문화로드’에서 차를 한잔 마시고 복귀해도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예금보험공사 김주현 사장(54)은 “지난해 8월부터 통인시장과 자매결연을 체결하고 사내 ‘전통시장 가는 날’ 행사를 벌여왔다”면서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매달 1회 진행하던 행사를 주 1회로 늘려 잡을 정도로 사내 반응이 폭발적이다”라고 말한다.
이날 예금보험공사는 자매결연 1주년을 기념해 노트북과 빔 프로젝트 등 교육기자재를 시장상인회 측에 전달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 밖에도 통인시장을 찾은 고객들에게는 쇼핑백과 기념품이 담긴 선물가방을 선물하며 ‘전통시장 홍보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서울 도심에 이렇게 아기자기한 전통시장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문화관광형 시장으로의 변신에도 성공했어요. 이웃 사촌격인 예금보험공사도 시장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매주 찾고 있습니다.”
예금보험공사는 ‘예금자 보호와 금융제도의 안정성 유지’를 위한 정부조직답게 스스로의 업무 특성을 활용한 전통시장 활성화 캠페인에도 남다른 실적을 보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활동이 금융정보 취약계층을 찾아가는 생활금융교육 캠페인이다. 근래 저축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예금보험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피해를 본 사람 중 상당수가 다름 아닌 전통시장에 종사하는 상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예금보험공사는 금융정보 부족으로 예금 손실 등 금융위험에 노출된 금융정보 취약계층을 상대로 ‘SMART 생활금융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주력해왔다. 지난해부터는 저축은행 주변의 전통시장에서 ‘금융피해 방지’를 위한 금융상식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시장경영진흥원과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공동지원 협약을 맺고 아예 전통시장 상인들만을 위한 전문 교육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지난 1년 반 동안 40회의 교육을 통해 2500여 명의 시장 상인들을 배출한 ‘상인대학 생활금융교육’ 과정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예금보험공사는 이런 노력을 통해 예금자보호제도 및 보이스피싱 등의 신종 금융사기방지를 위한 실생활 금융정보 공유에도 앞장서고 있다.
김 사장은 이날 직원 30여 명과 전통시장 홍보활동을 벌이고 통인시장에 마련된 도시락 카페에서 점심과 함께 ‘시장표 커피’를 즐겼다. 회사 인근의 단조로운 식당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직원들은 한 주의 스트레스를 날린 눈치였다.
“금융기관 종사자들은 반드시 이런 전통시장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현장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예금자 보호라는 과업도 바로 이런 자그마한 시장 상인들의 호주머니 사정에서 시작하거든요.” ▼ ‘시장표 뷔페’는 전통시장 혁신의 상징 ▼
■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
“올해 대한민국 전통시장 최고의 히트상품 가운데 통인시장의 ‘도시락 카페’도 포함될 거예요. 일본과 중국 관광객들의 반응도 폭발적입니다.”
정흥우 통인시장 상인회장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올 초부터 선보인 ‘도시락 카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전통시장 혁신의 대표 브랜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1941년 일제강점기 효자동 인근 일본인들을 위해 만든 공설시장에서 출발한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tonginmarket.co.kr)은 경복궁과 청와대 주변에서 서촌의 서민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시장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았다. 75개의 영세한 가게들은 아무런 특장(特長)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생존을 걱정할 정도로 심각한 정체기를 겪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낮 시간에 적막감이 감돌 정도였어요. 도심 한복판이란 장점과 반찬가게가 많은 시장의 특성을 적극 활용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대기업에서 15년 이상 근무하고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은 정 회장은 시설 현대화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시장의 활성화를 다각도로 고민했다. 그러다 떠오른 아이템이 다름 아닌 ‘시장표 뷔페’였다.
실제로 시장 손님들도 마트에서처럼 반찬을 시식하길 원했다. 하지만 영세한 시장상인들은 인심을 쓰기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기분 좋게 상생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에서 시작된 사업은 아예 500원씩을 내고 반찬을 담아 점심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는 대규모 사업으로 발전했다. 도시락을 위한 전용 화폐까지 발행할 정도가 됐다.
이제는 전국적인 입소문을 타고 시장구경도 하고 시장음식으로 식사를 하려는 이들이 평일에는 200여 명, 주말에는 최대 1000여 명에 이른다. 이런 도시락 관광객들은 자연스럽게 시장의 활력에 큰 보탬이 된다.
“통인시장은 주변의 관광인프라로 축복받은 시장입니다. 서울을 찾은 관광객이라면 모두가 통인시장을 찾을 수 있도록 철저한 위생과 따뜻한 인심으로 무장한 시장이 되도록 치열하게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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