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대내외 경제 여건을 고려하면 지금은 기업들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이 필요한 때다.”
정부가 기업들에 한층 공격적이고 선제적인 투자를 주문하고 나섰다. 기업의 투자 부진이 경기침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6일 펴낸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현재 설비투자가 심각한 부진에 빠져 있으며, 이 상태가 지속되면 성장잠재력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기업투자 감소와 인구 고령화가 경제구조에 타격을 입히면서 민간 연구소들도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빠르게 하향 조정하고 있다.
○ 설비투자 증가세 1990년대의 절반
유럽 재정위기와 내수 침체의 영향으로 국내의 각종 경제지표가 전반적으로 부진하지만 투자는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2010년 3분기만 해도 1년 전보다 26.3%나 증가했지만 이듬해부터 빠르게 둔화돼 지난해 4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3.3% 감소했다. 올해는 1분기에 잠시 플러스(8.6%)로 돌아섰다가 2분기에 ―2.9%로 추락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제조업 투자심리 지수도 7월 이후 석 달 연속 하락해 앞으로의 전망도 어두운 상황이다.
재정부에 따르면 설비투자 증가율은 1991∼2000년 연평균 9.1%에서 지난해에는 3.7%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만 해도 불황 탈출의 돌파구 역할을 했던 기업의 투자가 지금은 경기회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경기 반등을 앞두고 이뤄지는 기업의 선제적인 투자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재정부는 “외환위기 이전에는 경기확장 국면이 시작되기 약 3분기 전부터 투자가 늘었지만 지금은 이 시점이 ‘1분기 전’으로 단축됐다”라며 “평상시엔 여유자금을 내부에 쌓아뒀다가 경기 반전이 뚜렷해져야 투자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투자 부진 현상이 특히 심한 중소·중견기업, 서비스업 부문에 대한 맞춤형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 “잠재성장률 2030년대 1%대 하락”
인구 고령화로 이미 약화된 한국의 성장잠재력은 기업의 투자 부진까지 겹쳐 더 빠른 속도로 가라앉을 조짐을 보인다. 민간 연구기관들은 이제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최저 3% 중반대까지 낮춰 잡고 있다.
지난달 LG경제연구원은 2010년대 평균 잠재성장률을 3.5%로 추정하고 이 수치가 2020년대에 2.2%, 2030년대엔 1.7%까지 각각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LG경제연구원은 “출산율 하락에 따른 노동인구의 감소, 고령화로 인한 저축률 하락과 투자 둔화가 하락의 주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도 “2년 전에 우리 잠재성장률을 3.8% 정도로 추정했지만 지금처럼 성장이 둔화되고 고용과 투자가 부진하면 이보다 더 낮아지는 게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잠재성장률은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어쩔 수 없이 줄어드는 측면도 있다”면서 “단기적으로는 기업 투자와 고용, 중장기적으로는 인구 문제가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 ::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만든 용어다. 외부 여건 등에 좌우되지 않고 자신의 판단과 본능에 따라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기업가 정신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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