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 ‘뉴 SLS AMG’와 포르셰 신형 ‘911 카레라S’. 자동차 마니아라면 한 번쯤 소유하고 싶은 꿈의 스포츠카 두 대를 잇달아 시승하는 행운을 누렸다.
○ 가속력은 SLS ‘판정승’
스포츠카의 성능을 가장 극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순간 가속력이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이르는 시간을 보면 SLS는 3.8초, 카레라S는 PDK변속기와 스포츠크로노패키지 옵션을 동시에 넣었을 경우 4.1초다.
카레라S의 4.1초도 상당히 빠른 수치지만 SLS의 3.8초는 단지 0.3초만 빠른 것이 아니라 가속의 격이 다르게 다가왔다. 최고출력 571마력을 뿜어내는 8기통 6.2L 엔진이 들어간 SLS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튀어나간다면 카레라S는 엔진을 최대한 쥐어짜고 영민한 변속기의 도움을 얻어 빠듯하게 달성한 기록이라는 느낌이다.
고속으로 올라갈수록 그 차이는 더욱 확연해진다. SLS는 출발 후 10초가 조금 넘자 시속 200km까지 한숨에 올라갔고 그 공포스러운 가속력은 250km까지 계속 이어진다. 시속 300km도 어렵지 않게 돌파하고 310km를 넘어서야 속도의 증가가 둔해진다. 속도제한장치만 없다면 330km까지는 가능할 듯하다.
카레라S도 고성능 스포츠카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충분히 아찔한 경험을 줄 수 있는 수준이지만 고출력에 중독된 ‘환자’들에겐 평범을 약간 넘어선 정도다. 포르셰는 이런 몹쓸 버릇이 든 마니아들을 위해 시속 100km 도달 시간이 3초대 초반인 터보S 모델을 준비하고 있다.
○ 핸들링은 막상막하
SLS는 보닛이 유난히 길다. 엔진과 변속기처럼 무게가 많이 나가는 부품을 앞뒤 바퀴의 가운데(차체의 중심)에 배치하면 운동성이 좋아지는 물리학적 원리에 입각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SLS의 앞바퀴는 엔진보다 더 앞으로 배치하면서 그만큼의 공간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일반 승용차는 대부분 엔진이 앞바퀴보다 약간 앞에 있고 앞바퀴 축에 절반 정도 걸쳐 있기만 해도 스포티한 설계를 했다고 자랑하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엔진이 앞바퀴 뒤로 배치된 SLS의 핸들링이나 코너링 성능은 얼마나 환상적일까. 이런 생각으로 앉은 SLS는 분명 멋진 운동성능을 보였지만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너무 긴 앞 뒤 바퀴의 거리 때문에 어색할 때도 있었다. 스포츠카 중에서도 상위급에 속하는 것은 맞지만 물리학에 충실했던 설계에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반면 카레라S는 기대 이상이었다. 참고로 포르셰 911시리즈는 엔진이 보닛이 아닌 트렁크 위치에 있어서 후륜의 하중이 더 나간다. 그래서 급가속할 때 무게중심이 더욱 뒤로 몰리며 전륜이 가벼워져서 핸들링이 불안정해지는 전통적인 단점이 있었다. 또 후륜이 한 번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무거운 무게 때문에 좀처럼 이를 컨트롤하기 쉽지 않다는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포르셰는 새 모델을 내놓을 때마다 이 난제들을 조금씩 극복해 이제는 거의 느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게다가 911시리즈의 특기인 급감속할 때, 감속하면서 회전할 때, 내리막길을 달릴 때의 안정감은 더욱 좋아졌다. 기계적인 성능도 높아졌지만 최근 발달한 전자장치의 도움을 받은 덕분이다.
결국 SLS는 물리적인 우수성에 비해선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카레라S는 단점을 해결하고 기대 이상의 성능을 보이면서 맞비교가 가능해졌다.
○ 운전자 편의성은 카레라S ‘완승’
SLS의 첫 느낌은 뜨거웠다. 요즘 이런 차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것도 부드러움과 균형을 중요시하는 벤츠에서 말이다. SLS의 서스펜션에 관용이란 없었다. 노면이 고르지 않으면 이를 거르지 않고 운전자에게 화끈하게 모두 전달한다. 레이싱카에 버금가는 서스펜션 세팅으로 노면이 좋은 고속도로나 서킷을 달리기에는 제격이지만 거친 서울시내 도로에 나가려면 심호흡이 필요하다. 1시간 정도 광화문과 삼청동 등을 돌아다녔더니 피곤해진다. 연료소비효율은 시내 구간에선 L당 5km 정도, 고속도로에서 얌전히 달리면 10km 정도가 나온다. 물론 마구 달리면 ‘묻지마’ 연비를 보인다.
카레라S는 이에 비하면 승용차 수준이다. 운전대를 동료에게 맡기고 서울∼태백 레이싱파크를 왕복했는데 편안해서 잠이 솔솔 왔다. 승용차처럼 물렁대는 편안함이 아니라 단단한 안정감에서 비롯된 편안함이었다. SLS와 달리 전자조절식 서스펜션이 들어간 덕분이기도 하지만 뛰어난 핸들링을 보이던 고성능 스포츠카가 일상 주행에선 스포티한 승용차 수준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연비도 3000cc급 승용차 수준이다. 시내주행은 L당 7∼8km, 고속도로 주행은 13km까지 나왔다.
○ 도로를 장악하는 포스는 SLS ‘압승’
SLS는 서 있을 때도 시선을 끌지만 시동을 거는 순간 으르렁거리는 소리 때문에 반경 20m 이내에 있는 사람들의 이목을 흡수해버린다. 특히 걸윙 도어가 열리는 순간이면 애써 외면하려던 남성들마저도 부러운 눈길을 보낸다. 사실 걸윙 도어는 타고 내리기 불편할 뿐만 아니라 머리도 자주 부딪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수의 포효와 같은 엔진 배기음과 갈매기의 날개가 펼치지는 듯한 걸윙 도어, 길게 뻗은 보닛, 바닥에 납작 엎드린 자태는 옆에 서 있는 카레라S를 일반 준중형 세단으로 느끼게 만들어버린다.
SLS는 불같은 사랑으로 달아오르지만 오래 곁에 두기엔 부담스러운 ‘팜므파탈’이라면 카레라S는 오래 곁에 둘 수 있고 편하지만 품위는 잃지 않는 ‘정경부인’ 스타일인 셈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