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와 전통이 뒤섞인 서울의 매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광장시장입니다.”
18일 오전 11시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58)은 요리사 복장을 하고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서문(西門)에 등장했다. 한국관광공사가 마련한 ‘희망 한국을 만드는 전통시장 가는 날’ 행사의 일환으로 달려온 길이었다. 독일 출신으로 방송을 통해 얼굴이 널리 알려진 때문인지, 이 사장을 알아본 시장상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날 이 사장은 광장시장 ‘일일 점주(店主)’가 되어 시장의 명물인 빈대떡을 부치고, 직접 부친 빈대떡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대접했다.
근래 광장시장은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 가운데 하나로 급부상했다. 광화문 덕수궁 등 4대문 안 고궁과 지리적 연계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한국의 역동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구나 호주머니가 가벼운 관광객들을 유혹할 만한 저렴한 맛집들이 즐비하다. ○ 직접 앞치마 두르고 외국인 관광객 맞이
이번 행사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전통시장의 매력을 홍보하고, 전통시장 활성화를 통해 내수 기반을 확대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이제 대한민국은 연간 1000만 명 이상의 외국인들이 찾는 관광 선진국이 됐습니다. 향후 2000만 관광객 시대를 위해서는 반드시 전통시장이란 관광자원의 재평가가 필요합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한국의 생활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전통시장의 매력은 더욱 중요해진다. 더구나 최근 여행의 트렌드는 ‘슬로(Slow)’로 옮아가고 있다. 자동차를 타기 보다는 도보로 이동하며 값비싼 쇼핑보다는 전통의 멋과 맛을 직접 체험하는 관광상품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다.
제주도의 올레길 열풍도 바로 그런 연장선 위에 있다. 이에 한국관광공사와 100년 역사의 광장시장은 전통시장 관광매력 홍보 활동에 협력하기로 결의한 것이다. 올 5월 광장시장과 자매결연을 한 관광공사는 매월 넷째 주 금요일을 ‘전통시장 가는 날’로 정하고, 직원들의 전통시장 방문 등 각종 이벤트를 연말까지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이 사장의 전통시장 사랑은 계속 이어졌다.
“여행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저는 ‘영감(inspiration)’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시장이야말로 현대인들에게 살아 숨쉬는 영감의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 “전통시장만큼 영감 주는 장소도 없어”
이날 광장시장에는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아와 행사에 합류했다.
성균관대에서 유학 중인 중국인 왕기 씨(30)는 “중국과 달리 위생적인 시장에서 바로 음식을 조리해 먹는 모습이 신기하다”면서 “이 밖에도 중국 관광객들이 좋아할 만한 저렴하고 맛좋은 음식과 선물용 상품이 가득하다”고 호평했다. 러시아에서 왔다는 타샤 씨(26)는 인근 혜화동에 살기 때문에 광장시장으로 장을 보러 자주 온다면서 “언제나 역동적인 한국시장의 풍경은 유럽인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이 밖에도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통시장 여행상품을 개발해 5월부터 모집을 시작했다. 9월 현재 총 4620명이 전통시장 여행상품을 이용하는 성과를 거뒀다.
해외에서도 활발한 전통시장 관광 마케팅이 이뤄지고 있다. 중화권 15개 여행사와 함께 대대적인 한국 전통시장 체험 프로모션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올해 말까지 총 1만여 명의 중화권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다.
이 사장은 “전통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전통적인 생활문화를 간직한 소중한 관광매력이자 생활유산이다”며 “한국인들의 열정과 흥이 그대로 남아있는 전통시장이 한국관광의 중요한 테마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대한민국 전통시장? 광장시장 빼고 얘기할 수 없죠” ▼
“두산그룹도 바로 이곳에서 시작했고, 자유당 때 이름을 날리던 이정재의 사무실도 바로 여기 있었고… 광장시장을 빼놓고는 대한민국 전통시장을 얘기할 수 없어요.”
시장의 역사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윤영재 광장시장상인총연합회장(67)은 순식간에 100년이 넘나드는 장구한 스토리를 꺼내들었다.
시장의 첫 이름은 지역에서 유래한 이현(梨峴)시장이었다. 종로 4가와 예지동 일원에 배나무 여러 그루가 심어졌다고 해서 ‘배오개 시장’이라고 불린 것이다. 그리고 바뀐 이름이 ‘동대문시장’이었다. 1905년 한성부에서 시장개설 허가를 낼 당시의 법적인 명칭이기도 했다. 시장 주위에 광교(너른 다리)와 장교(긴 다리)가 있다고 해서 광장(廣張)시장으로 부르는 이들이 생겨난 것도 그때쯤이다.
그러다가 종로의 거상인 박승직(두산 창업주)과 장두현 등은 동대문시장 관리를 위해 1905년 광장(廣壯)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광장시장’과 ‘동대문시장’이란 두 이름이 혼용되다 1960년대 이후 동대문 일대가 의류시장으로 변모하면서 광장시장으로 정착했다.
“전성기? 우리의 전성기는 자유당 때지… 그야말로 전국의 거상들이 다 여기 모여 있었으니까… 그 이후로는 계속 하락했지만 요즘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표정들이 조금 좋아졌어요.”
6.25전쟁과 화재 등으로 수차례 파괴됐지만 상인들의 합심으로 시장은 이내 활기를 띄었고 다시금 서울의 중심상권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모든 게 있던’ 종합시장이었지만 1980년대에는 한복과 폐백 등 혼례용품 등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제는 빈대떡이나 마약김밥 등 민속 먹거리로 인지도가 높다. 평일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더 많이 눈에 띌 정도로 국제적인 시장으로 변모했다.
※ 1기관-1시장 캠페인 기업 참여 문의 동아일보 기획특집팀 02-2020-0350, 시장경영진흥원 02-2174-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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