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위기에 처한 웅진그룹. 이 그룹 5개 상장사의 사외이사에는 전 법무연수원장, 전 헌법재판관, 전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전 보건복지부 차관, 전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 등 쟁쟁한 전직 고위 공무원들이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그룹 내 위기가 고조된 올해 이 사외이사들의 견제 기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은 계열회사를 위한 자금 대여 등 18개 안건을 모두 반대 없이 통과시켰다.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웅진홀딩스를 비롯한 웅진그룹 상장사 5개의 이사회는 2009∼2011년 3년간 총 409개의 안건을 처리했지만 이 중 사외이사가 반대 의견을 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 기업뿐만 아니라 지난해 주요 대기업 상장사의 이사회에서 논의된 안건 중 사외이사의 반대로 부결된 비율은 0.23%에 그쳤다. 이런 점 때문에 외부 전문가의 참여를 통해 이사회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대주주의 전횡을 차단한다는 사외이사 본연의 목적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현황 의무공시 대상인 46개 대기업집단의 상장계열사 283개의 이사회를 조사 분석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12개월간 이들 기업의 이사회 안건 5692건 중 사외이사의 반대 때문에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36건(0.63%)뿐이었다.
부결된 안건은 13건(0.23%)에 그쳤고 수정 의결된 안건이 14건, 보류된 안건은 6건이었다. 그나마 사례를 살펴보면 총수가 없는 대기업인 포스코, KT 등의 일부 소규모 계열사에서 반대 및 영향력 행사가 이뤄진 게 대부분이다.
한 대기업 사외이사인 대학교수 A 씨는 “대주주가 추진하는 신사업에 관한 내용이 이사회에 올라오면 사외이사로선 솔직히 내용도 잘 모르고 재무 상황 등을 이유로 반대하기도 마땅치 않다”며 “현실적으로 경영진을 믿고 찬성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공정위 당국자도 “대다수 이사회에서 원안대로 안건이 통과돼 사외이사의 실질적 견제가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여은정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기업이 경영 결정을 할 때 대부분 결론을 미리 정하고 사외이사에게 형식적으로 찬성할지를 묻는 경우가 대부분인 데다 그나마 결정에 필요한 핵심정보는 제공되지 않는다”며 “견제가 원활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회사가 사외이사에게 충분한 경영정보를 제공하고 독립적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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