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자동차부품 생산에 필요한 기계를 만드는 공작기계 전문업체 디엠씨의 박효찬 대표(54·사진)는 20대의 창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7세인 1985년 경남 창원시(옛 마산)에 철공소를 차리며 창업을 한 박 대표는 “젊음 그 자체가 열정과 참신함을 보여주는 브랜드”라며 “제조업계에도 젊은 최고경영자(CEO)가 많이 나오길 바란다”고 했다.
박 대표는 공고를 졸업한 뒤 바로 공장에 취업했다. 평생직장으로 삼겠다는 처음의 의지가 꺾인 것은 현장직과 사무직에 대한 차별대우 때문이었다. 당시 야간대학에서 기계공학을 배웠던 박 대표는 현장과 학교에서 쌓은 노하우를 토대로 사업을 시작했다. 박 대표는 “퇴직금으로 받은 200만 원이 가진 것의 전부였지만 내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도전했다”고 말했다.
사업 초기에는 자본이 없어 간단한 납땜과 수리만 하는 정도였다. 박 대표는 “살아남기 위해선 무엇이든 된다고 답하는 ‘예스맨’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공장 기계는 물론이고 이웃집의 대문 수리까지 가리지 않고 맡았다. 박 대표는 “다양한 기계를 수리하다 보니 중요한 것은 수리가 아니라 제작인 것을 깨달았다”며 “1992년 회사를 세우며 본격적으로 기계제작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큰 꿈을 안고 사업을 확장했지만 기계제작업계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박 대표에게 일감을 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박 대표는 자체 기계를 생산 및 판매하는 대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거래처를 확보했다. 기계 외에도 스티어링휠 구조물 등 간단한 자동차부품을 직접 만들며 사업 분야를 다각화했다.
사업은 본궤도에 올랐지만 아쉬움은 남았다. 박 대표는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OEM도 좋지만 내 이름을 건 제품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다”고 말했다. 때맞춰 같은 업계에 있던 대구중공업이 부도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접한 박 대표는 2004년 이를 인수하며 자체 브랜드 생산에 나섰다. 박 대표는 “당시 대구중공업의 절반 규모밖에 안 되던 우리가 인수하겠다고 나서자 업계 사람은 물론이고 사내 직원들의 반대도 거셌다”고 말했다.
우려와 달리 박 대표의 ‘뚝심’은 좋은 결과를 냈다. 꾸준히 자체 제품을 만든 결과 매출은 300억 원대에서 현재 800억 원 대(그룹사 전체 2000억 원대)로 뛰어올랐다. 2007년 터키를 시작으로 디엠씨는 현재 20여 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박 대표는 “1인 철공소에서 직원 200명을 둔 기업으로 성장했듯 2020년까지 세계적인 업체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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