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 소득의 생산직이라고요? 공장에서 밤낮으로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도 남편, 아버지의 자리는 없더군요. 집에 돈만 벌어다 주는 기계에 불과했어요.”
기아자동차는 2월부터 노사가 함께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8월 경기 광명시 소하리공장을 비롯해 경기 화성, 광주광역시 등 3개 공장에 전문심리상담실 ‘마음산책’을 열었다. 국내 기업 최초로 회사와 노조, 학회 3자가 참여하는 전문심리상담 서비스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정신건강의 날’(10월 10일)을 앞두고 8일 찾아간 소하리공장 ‘마음산책’의 분위기는 아늑했다. 박성현 마음산책 대표(심리학박사)는 “높은 연봉과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는데 무슨 고민이 있겠느냐는 외부의 시선과 달리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노조원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6개월여의 준비 끝에 사내 상담심리센터를 마련한 것은 높아지는 자살률 때문이다. 지난해만 이 회사에서 10명의 직원이 우울증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물론 전체 기아차 임직원 수(3만 명)를 감안했을 때 직원 1만 명당 자살률은 3명으로 오히려 한국 사회의 인구 1만 명당 자살률 3.35명을 밑돈다.
하지만 회사와 노조는 부끄러운 치부로 가리기보다는 한국 사회를 흔드는 우울증 문제를 회사 울타리 안에서부터 해결해 보자고 손을 맞잡았다. 이재열 기아차 산업안전기획팀 부장은 “올해는 임금단체협상이 진행되던 해라 노사 간 갈등이 격했으나 이 문제에 있어서는 임단협 투쟁과 별도로 진행할 만큼 양측의 공감대가 컸다”고 말했다.
정태균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마음산책을 공장 밖 지역사회로 범위를 넓혀 사회 전반에 퍼진 우울증 문제 해결을 기업과 노조가 함께 참여하는 사회공헌활동으로 확산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기아차 노사의 이러한 시도는 학회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박 대표는 “국내 자동차산업에서 노조는 분노와 불만을 바탕으로 투쟁을 통해 목적을 쟁취해 왔다”며 “그런 분위기가 일부 노조원들에게는 마음의 병으로 옮아갔다”고 설명했다.
노사는 이런 심리적 문제를 치유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고 운영을 객관적인 외부 기관인 한국상담심리학회에 맡겼다.
김재형 기아차 산업안전기획팀 과장은 “상당수 국내 기업들에서는 인사부서에서 상담심리를 진행하기 때문에 상담 결과가 인사상의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직원들이 상담을 받기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공간도 직원들의 왕래가 가장 잦은 정문 앞에 마련했다. 후미진 곳에 커튼을 치고 상담을 받는 다른 기업들의 심리상담실과 달리 분위기 좋은 카페처럼 꾸며 문턱을 낮췄다. 전문 심리상담사 2명이 상근하며 업무시간에도 언제든지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회사 측에서도 배려했다.
노조원들의 호응도 긍정적이었다. 김길문 소하리공장 마음산책 실장은 “8월 개소 이후 매일 3, 4건의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며 “자신뿐 아니라 갈등을 겪고 있는 자녀도 데려와 상담을 받게 할 정도로 노조원들의 호응이 높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자신은 경제적 이유로 대학 진학의 기회가 없었지만 자녀만큼은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 하는 직원이 많다”며 “자녀와의 갈등을 상담하는 비율도 높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내년부터 주간 2교대제가 시행되면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정서적 괴리감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아차처럼 최근 재계에서는 ‘멘털 생산성’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한국생산성본부가 직장인 1만 명을 대상으로 기업 성과에 영향을 주는 정신건강 요인을 측정해 점수화한 결과 평균 점수가 낙제점 수준인 50점에 불과했다. 생산성본부 관계자는 “기업들도 단순히 직원 복지 차원이 아니라 기업의 성과를 위해서라도 멘털 생산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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