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초순 어느 날 미래산업 영업부 박모 대리가 이 회사 이상춘(가명) 경영지원팀장에게 물었다. 우리사주를 받기 위해 퇴사할 것인지를 물어보는 자리에서였다. 박 대리는 전세금이 부족해 우리사주를 팔아 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사주를 받으려면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 이 팀장은 망설였다. ‘나까지 나간다고 하면 회사가 어떻게 되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난 퇴사하지 않겠어.” 이 팀장은 말했다.
하지만 돈이 필요한 직원은 많았다. 며칠 뒤 박 대리를 포함해 전체 직원 220명 중 92명(41.8%)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미래산업 직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한 것은 주가가 1000원을 돌파하던 9월 초였다. 평소 주가는 액면가 100원의 2, 3배 수준인 200∼300원에서 오르내렸다. 하지만 ‘정문술 미래산업 창업주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간에 친분이 있다’는 막연한 소문에 ‘안철수 테마주’로 엮이면서 주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국내 벤처기업의 상징적 존재 중 하나로 꼽혀 온 미래산업의 주가는 1990년대 후반에 액면가의 100배인 1만 원 선에 거래된 적이 있고 2000년대 초반에는 2000원 선을 유지했다. 약 10년 만에 주가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지만 회사 분위기는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점심 뒤 농구나 족구를 즐기던 직원들이 언젠가부터 삼삼오오 모여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주식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얼마 전 유상증자로 직원들은 5만 주씩, 팀장급은 10만 주씩의 주식을 갖고 있었다. 곧이어 사직서를 내고라도 우리사주를 받아 처분할지가 최대 화제로 떠올랐다.
권순도 미래산업 사장은 고민에 빠졌다. 5000만 원, 1억 원이라는 큰돈 앞에서 직원들을 붙잡아 둘 방법이 없었다. 권 사장은 전 직원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다.
“월급쟁이가 1억 원을 쥘 수 있는 기회는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다. 원한다면 사직서를 내라. 다만 한 가지는 약속하자. 사직서는 9월 14일과 28일 이틀만 받겠다. 그 이후엔 나간다는 얘기를 꺼내지 마라.” ▼ “줄사표 속 R&D - 영업 핵심인력은 남아 다행” ▼
결국 9월 14일 89명에 이어 9월 28일 3명의 직원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주가는 9월 13일 2000원 선을 돌파했다.
그런 주가가 갑자기 다음 날부터 추락하기 시작했다. 14일 1765원의 하한가로 마감한 주가는 17일에도 7.93% 떨어졌고
18, 19일 연이어 하한가로 추락했다. 의문은 19일 풀렸다. 정문술 창업주가 14일 보유 주식 2400만 주를 모두 처분한
것이었다. 같은 날 권 사장과 권국정 이사도 각각 60만 주, 14만 주를 장내 매도했다. 미래산업이 19일 이를 공시한 것이다.
주가 급등으로 들떴던 회사 분위기는 순식간에 분노와 절망으로 바뀌었다. 주식을 팔지 않고 회사에 남겠다던 직원들도 충격을
받았다. 한 직원은 “배신감에 몸이 떨렸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머리에는 ‘회사가 잘 안 될 것 같으니 최대주주고 사장이고 주식을
던져버린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지워지지 않았다.
14일 사표를 내고 17일 우리사주를 받으려고 기다리던 퇴사자들은 눈앞에서 큰돈이 날아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매도 차익이 3000만∼6000만 원 줄어든 셈이었다.
몇몇 일반투자자도 하루가 멀다 하고 회사를 찾아왔다. 이들은 다짜고짜 임원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로비에 드러누워 ‘대주주
나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얼굴색이 하얗게 질린 직원들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업무 공백이 이어졌다.
정문술 창업주도 비난의 표적이 되는 등 곤경에 처했다. 그는 동아일보 기자에게 “대체 내가 돈 먹고 튀는 그런 사람이냐”며
“미래산업을 ‘도박장’처럼 만들어버린 투기꾼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주고 싶어서 한꺼번에 매각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안철수
대선후보와의 관련성도 강하게 부정했다.
그러나 직원들은 창업주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존경받았던 분이지만 평생 쌓아왔던 명예가 이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도 무너져 버렸다”고 덧붙였다. 테마주 광풍(狂風)이 휩쓸고 간 회사에는
분노와 절망만이 가득했다. 엉망이 돼버린 회사를 수습해야 하는 남은 직원들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동요하는 직원들과 거래처를 먼저 안심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거래처들은 대주주가 없어져버린
미래산업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연구개발(R&D)에 몰두하던 예전 미래산업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거래처들은 그 점을 염려하고 있었다.
권 사장이 중국 출장을 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사외이사인 이광형 KAIST
교수까지 회사를 찾아가 직원들을 다독였다. “희망은 누가 가져다주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다. 부디 회사의 버팀목이 되어 달라. 나도 노력하겠다.”
권 사장도 회사의 미래가 보이지
않아 지분을 매각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집사람이 아파서 돈도 필요했고 조금은 재테크 욕심도 들었다”고 속사정을
설명했다. 그러고는 “미래산업을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거래처에 직접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회사 경영에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시간이 흐르고 추석이 지나자 남은 직원들의 마음은 조금씩 누그러졌다. 경영진도 정상화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권 사장은 “회사가 바쁜 게 가장 좋다”며 내년에 기존 사업에다 자동차 장비를 더해 수익성을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경영권 안정화 방안으로 “우리사주(2.01%) 및 우호 지분을 8%까지 늘려 적대적 인수합병(M&A)에서 회사를
보호할 것”이라고도 약속했다.
우리사주를 받으려고 회사를 떠난 직원들이 대부분 생산·관리직이고 핵심 인력이라 할 수
있는 연구개발 및 영업 인력은 대체로 남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우선 급한 대로 10여 명을 뽑아 급한 불은 껐지만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영업, 개발 인력은 좀 더 보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 테마주로 오르내리기 전의 원상태로 회복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권 사장은 “한 번 작전세력의 표적이 되면 멀쩡한 회사도 만신창이가 된다”면서 “금융당국이 작전세력을 감시한다고 하지만 일이 벌어진 이후에나 잡는다. 사후약방문 같은 정책보다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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