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 온 뒤 주룽(九龍) 반도의 화려한 빌딩 숲 사이로 불어오는 홍콩 만의 바닷바람이 이렇게 차갑게 느껴진 적이 없는 것 같다. 몇 년째 이어지는 지루한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찬바람이 아시아 최고의 금융 중심지인 홍콩에도 불어와서일까.
수년간 이곳에서 살며 느낀 홍콩이라는 도시는 중국의 성장과 더불어 나날이 빛을 더해 가던 아시아 금융계의 보석과도 같은 존재였다. 지난해까지는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홍콩시장을 통해 상장을 하기 위해 줄을 섰고 이 덕분에 홍콩은 3년 연속 전 세계 기업공개(IPO) 시장 1위 자리도 차지했다.
그런데 홍콩의 밤하늘을 수놓는 레이저 쇼처럼 영원히 화려할 것만 같던 홍콩시장이 올해 들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재작년 93건, 60조 원 규모였던 홍콩의 IPO 규모는 지난해 82건, 조달금액 27조 원으로 줄어들더니 올해 상반기(1∼6월)에는 31건, 조달금액은 4조 원 수준에 그쳤다. 홍콩을 글로벌 최대 IPO 시장으로 이끌었던 중국의 대표적인 기업들 역시 올해는 아예 IPO를 시도하지 않았다. 글로벌 경제 불황으로 시장 자체가 움츠러든 탓이다.
홍콩의 딤섬본드(해외투자자가 홍콩 시장에서 발행하는 위안화 채권) 시장 상황도 만만치가 않다. 2012년 상반기 딤섬본드 발행 금액은 총 17조5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약 21% 증가했다. 하지만 여기서 중국 정부의 딤섬본드 발행 지원 정책에 따른 중국 국책은행의 발행분을 빼면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다는 계산이 나온다. 중국 경제의 침체로 위안화 절상률이 기대치를 밑돌면서 위안화 절상에 따른 환차익이 어려워졌고 이에 따라 딤섬본드 수요마저 주춤하는 형국이다.
홍콩은 금융위기의 근원지인 유럽만큼 나쁘진 않지만 글로벌 경제의 한파를 벗어나진 못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악천후 속에서도 홍콩을 ‘위안화 역외 금융센터’로 육성하고자 하는 중국과 홍콩 정부의 의지가 많은 부문에서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은 홍콩에 아직 많은 기회가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중국과 홍콩 정부는 최근 중국의 A증시(중국인과 인가받은 일부 외국 기업만 투자 가능)에 상장된 지수 관련 실물 주식들을 기초자산으로 삼아 상장지수펀드(ETF)를 만들고 이 ETF를 홍콩거래소에 상장해 거래하는 ‘RQFII(RMB Qualified Foreign Institutional Investor·RMB는 ‘런민비·人民幣’의 약어) ETF’ 제도를 7월부터 실시해 오고 있다.
RQFII ETF는 A주(A증시에 상장된 종목)를 기초자산으로 하며 홍콩거래소에서 RMB 단위로 결제되고 있으며 해외투자가들이 RQFII ETF를 매수하려면 아무런 제약 없이 RMB로 환전해 거래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중국 A주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길도 생겼다. 기존에는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이 중국 A주에 투자하려면 국내외 자산운용사들이 운용하는 QFII 펀드를 통해서만 할 수 있고 직접투자는 불가능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중국 정부가 위안화를 세계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한 ‘런민비 국제화 정책’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중국 정부는 향후 중국 A증시를 점차 외국인에게 개방해 나가고 RQFII ETF를 통해 중국 A증시의 주가를 부양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홍콩은 글로벌 경제 악화라는 위기 상황과 중국과 홍콩 정부의 노력이 결집된 시장이라는 기회를 모두 가지고 있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누가 그랬던가? 그렇다. 오늘의 홍콩 금융시장은 이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이 홍콩을 토대로 성장을 꿈꾸는 대한민국의 증권인에게는 홍콩에 대한 기대감을 잃지 않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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