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를 정도로 푹푹 찌던 7월 24일 서울중앙지법 별관 211호 경매법정. 경매가 시작됐지만 150여 석인 전체 좌석은 3분의 1 정도밖에 차지 않았다. 본격적인 경매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좀 더 자리를 잡았지만 참석률은 영 신통치 않았다. 서울 강남 명문학군의 아파트 등 다양한 69건의 매각 물건이 쏟아졌는데도 낙찰된 것은 12개뿐. 그나마 각각의 물건에 응찰자가 1∼3명 남짓이다 보니 경매는 오전 11시 반경 ‘속행’으로 끝나버렸다.
3개월이 지난 10월 24일 같은 서울중앙지법 경매법정.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초겨울이 됐지만 법정의 열기는 여름보다 더 달아올랐다. 투자자들은 물론이고 일찌감치 입구에 자리를 잡고 명함을 뿌리는 대출 상담사들에, 실제 경매를 보러 와 시험 삼아 경매전략을 짜고 있는 경매학원 수강생까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경매가 시작되자 입구에까지 수십 명이 서서 발표를 기다렸다. 한 건, 한 건 새 주인이 가려질 때마다 한숨과 환호가 엇갈렸다.
정부의 9·10 부동산 대책 이후 미분양 아파트를 중심으로 부동산시장이 꿈틀거리고 있는 가운데 경매시장에서도 ‘온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24일 서울중앙지법 경매법정은 이 온도 차를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자료 하나 받아가세요. 오늘 경매3계 물건을 보기 편하게 정리했는데 2000원입니다.”
법정 입구에서 호객을 하는 경매정보지 업체 직원들과 대출 상담사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이들을 지나치다 보니 어느덧 손에 쥐어진 명함만 5장이었다. 명함과 안내 책자에는 ‘아파트의 경우 낙찰가의 90%, 빌라 및 다세대는 낙찰가의 85% 이상 대출이 가능하다’는 상세한 안내와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있었다.
지나가는 투자자들을 붙잡고 “이 아파트는 입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최저입찰가가 이 정도라면 정말 괜찮다”라며 즉석 컨설팅까지 벌이던 대출 상담사 A 씨는 “9·10대책 이후 취득세 감면 혜택 때문인지 경매장이 수요자들로 북적거리고 있다”며 “사람이 모이니 자연스레 대출 안내인들도 늘었다”고 전했다. ▼ “제발 돼라, 제발”… 낙찰자 발표순서 되자 법정안 초긴장 ▼
경매법정 안에도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빈 의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의자에 앉지 못한 수십 명의 투자자들은 뒤편에 서서
입찰 과정을 지켜봤다. 손을 꼭 잡고 온 중년 부부와 아기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 등도 많이 눈에 띄었다.
응찰자들이 많았는지 오전 11시 반 안팎에 끝나던 경매는 이날 정오를 넘겨서야 마무리됐다. 전체 47건의 경매물건 중 이날 낙찰된
물건은 15건. 이날 응찰자들이 가장 많이 몰린 물건은 서울 강남구 수서동 삼성아파트였다. 감정평가액은 6억2000만 원이었지만
두 차례 유찰돼 최저 응찰가격이 3억9680만 원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로열층인 11층이고 전용면적 59.86m², 방 3개로
매력적인 물건이었다. 지하철 3호선 일원역이 걸어서 7분 거리에 있어 싸게 내 집을 마련하려는 실수요자들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수서동 삼성아파트의 발표 순서가 되자 법정 안은 초조감으로 가득 찼다. “제발 돼라, 제발.” 응찰자들은
무려 32명이나 응찰했다는 발표에 한숨부터 먼저 내쉬었다. 결국 이 아파트는 5억660만 원을 적어낸 응찰자에게 돌아갔다.
감정평가액의 80%가 넘는 높은 가격이었다. 법정 한쪽에서 “감정가의 80% 이상이라면 너무 비싸다”는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낙찰받지 못한 투자자들은 애써 아쉬움을 달래며 다음을 기약하는 모습이었다. 허탈한 표정으로 봉투를 찢어버리면서 “오늘도 안
됐다”라며 한숨을 내쉬던 주부 김모 씨(46)는 “부동산시장이 떨어질 만큼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좋은 물건이 있으면 잡아볼까
싶은데 그마저도 경쟁이 치열해 쉽지 않다”고 말하며 발걸음을 뗐다.
실수요자들로 경매법정은 넘쳐났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운 모습이 남아있었다. 수서동 삼성아파트를 제외하면 이날 매각된 물건은 동작구 상도동의 다세대 2건, 관악구 봉천동의
다세대 1건 등 1인 가구에 임대를 할 만한 1억 원대의 다세대주택이 대부분이었다. 경매시장에 등장했던 강남구 대치동 우성아파트나
선경아파트 같은 고가 대형 아파트에는 단 1명도 응찰하지 않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전체 주택(아파트, 다세대, 단독 및 다가구)의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9월 73.1%에서
10월 29일 기준 74.9%로 1.8%포인트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특히 연립 등 다세대주택 물건은 9월
72.1%에서 10월 74.0%로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부동산경기 침체로 아파트 불패 신화가 깨지는 모습을 지켜본 실수요자들이
자금 부담이 덜한 다세대주택을 선호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울중앙지법, 서울서부지법, 서울남부지법 등의 경매법정에
실수요자들과 투자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며 경매시장에 온기가 돌자 부동산시장이 ‘바닥’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주택 거래량이 꿈틀거리고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9월 24일 이후 10월 12일까지 3주간 신고된 전국 주택 거래량은 총
3만6050건으로 잠정 집계됐다. 주간 단위로 보면 9·10대책 시행 직후 추석 연휴가 겹친 9월 마지막 주 8709건에
불과하던 주택 거래량은 추석 이후인 10월 첫째 주 1만2926건으로 증가한 데 이어 둘째 주에는 1만4415건으로 늘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주택시장의 점진적 회복을 점칠 수 있는 변화가 감지된다”고 밝히고 있다. 전세금 상승도 구매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매매가 대비 전세금이 차지하는 전세가율은 9월 전국 기준으로 62.1%였다. 2003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렇지만 아직 전문가들은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김리영 주택산업연구원 박사는 “현재 시장이
저점을 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국내 경기, 전반적인 세계 경기가 좋아지지 않는 한 반등의 계기가 마련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유정 지지옥션 연구원 역시 “경매시장의 호조도 9·10대책의 영향이 크다”라며 “취득세 및 양도세 감면
혜택이 끝나는 시점 이후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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