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국 교민들과 유학생들 사이에서 “환율 참 좋아졌네”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수년간 고공행진을 하던 환율이 위안당 175∼176원으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필자가 중국 업무를 시작하던 7년여 전만 하더라도 환율은 위안당 110∼120원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였고 중국의 물가수준도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2008년 말에 닥친 미국발 금융위기는 환율을 단숨에 230∼240원 수준까지 올려놓았다. 다행히 위기가 잦아들면서 환율이 다시 낮아지긴 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185∼195원이었다.
게다가 중국 정부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쏟아 부은 자금 탓에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물가도 올랐다.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다며 눈물을 훔치는 유학생이 많았고 “차라리 한국이 낫지”라며 돌아간 사람도 적지 않다. 교민과 유학생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그런데 이들을 울렸던 중국의 화폐가치가 부쩍 떨어졌다. 중국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상하이에서는 식사하기 며칠 전부터 예약을 해야 했던 몇몇 식당이 요새 들어 쉽게 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됐고 백화점이나 쇼핑몰은 한산해졌다. 실업률이 높아지고 정부의 세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보도도 쉽게 접한다. 중국이 성장동력의 한 축을 내수경기에서 찾겠다고 하나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 분위기다. 중국인들은 아예 돈을 꺼낼 수 없게 호주머니를 바늘로 꿰매 놓고 사는 것 같다.
지표로 본 중국 실물경기의 체감온도도 아직까지는 차갑다. 중국 실물경기를 가장 잘 반영하는 보조지표인 제조업 PMI지수는 기준치 50을 밑돌고 있다. 전력사용량, 철도화물 운송량, 은행 신규 대출 지표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9월 전력 사용량은 전년대비 2.9%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쳐, 40개월 만에 최저치를 경신했고 8월 철도화물 운송량은 전년대비 7.97% 하락하며 2009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9월 위안화 신규 대출 역시 6232억 위안으로 시장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이 와중에 유럽 재정위기를 대하는 중국 정부의 모습은 4년 전과 사뭇 다른 것 같다. 화끈한 재정정책은 없고 각각 두 번의 지급준비율과 금리인하의 통화정책만 시행했다. 정권교체에 앞서 물가상승을 우려해 정부가 재정을 푸는 데 인색했기 때문이다. 중국도 인플레이션에 민감한 나라이다.
화폐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은 중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악화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교민들이 환율 하락을 반기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이 된다. 한국 경제는 중국이 힘들면 같이 힘들게 되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캐나다는 미국이 있어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한국도 중국이 있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양국의 경제관계를 지렛대로 삼으면 작지만 강한 나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중국 경제가 아예 기댈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경제지표도 몇 개 발표됐다. 경제 전문가들은 “상반기(1∼6월) 중앙은행이 단행한 지준율 및 금리인하 등의 통화정책이 서서히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다”며 이르면 4분기(10∼12월)부터 경제가 반등세를 나타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대외 여건상 경제가 호전되는 시기가 늦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들이 2013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7.5∼8.0%로 잡고 있는 것을 보면 내년은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을 것 같다. 또 중국의 정권 교체가 완료되면 중국이 쓸 수 있는 재정 및 통화정책 수단에도 여유가 생길 것이다.
세계와 중국이 슬기롭게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를 기대한다. 해외에 살면 걱정이 많아지고 애국자가 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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