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국민이 아파트, 자동차 등을 등록할 때 의무적으로 사야 하는 국민주택채권 등 소액 채권의 수익률을 담합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20개 증권사에 192억 원의 과징금을 물리고 일부 증권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가 증권사의 담합을 제재한 것은 1995년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특히 공정위가 증권사 직원들의 ‘인터넷 메신저’를 통한 대화 내용을 담합의 증거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정황이 포착된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조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공정위는 “1, 2종 국민주택채권, 서울도시철도채권, 지방도시철도채권, 지역개발채권의 수익률을 담합한 20개 증권사에 총 19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이 중 대우 동양 삼성 우리투자 한국투자 현대증권 등 6개사는 검찰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증권사는 2004년 3월경부터 2010년 12월 10일까지 매 영업일마다 오후 3시 반을 전후해 메신저 대화방에 접속해 제출할 소액 채권들의 수익률(금리)을 합의했다. 한국거래소는 증권사들이 제출한 금리를 평균해 매일 소액 채권의 금리를 결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증권사들이 담합을 통해 금리를 높게 적어냄으로써 싼 가격에 채권을 사들인 뒤 비싸게 시장에 되팔아 4000여억 원의 부당 매출을 거뒀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 당국자는 “일부 증권사들은 담합이 깨질 것을 우려해 다른 증권사들에 금리 입력 화면을 출력해 팩스로 보내라고 강요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검찰에 고발된 증권사들은 형이 확정될 경우 3년간 신규사업 인·허가를 받을 수 없으며 5년간 금융회사 최대 주주가 될 수 없어 사업 확장에 상당한 지장을 받게 된다.
공정위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금융소비자연맹은 증권사들을 대상으로 공동소송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밖에 증권사 담합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의 단체소송도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조사에서 공정위는 각 증권사가 거래소에 제출한 금리 수준과 입수한 메신저 대화 내용을 비교해 담합 사실을 가려냈다. 조사 과정에서 최소 2곳 이상의 증권사가 자진신고(리니언시)를 해 검찰 고발 면제 또는 과징금 감면 등의 혜택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증권사들이 제출한 메신저 대화 내용에서 공정위가 별도로 조사하고 있는 CD 금리 담합과 관련한 정황을 확인했거나, ‘앰네스티 플러스 제도’(별개의 담합 사건에 대해 자진신고를 하면 두 사건 모두 과징금을 감면해 주는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 CD 금리 담합을 인정한 증권사가 나왔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증권사들은 조사 결과에 대해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과거 국민주택채권 등은 대부분 사채시장 등에서 거래돼 헐값에 매각됐지만 2004년에 정부의 권고로 증권사들이 매입에 나서면서 헐값 매각 관행이 사라졌다. 투자 매력이 작아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상황에서 거래를 하려다 보니 증권사 간의 협의가 불가피했다는 주장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국민주택채권 등을 인수해 채권가격이 높아졌고, 결국 소비자들이 이득을 봤는데도 이를 고려하지 않고 제재를 내린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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