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정보기술(IT) 기기 제조업체인 아이리버는 새로 내놓은 IT 액세서리 브랜드를 홍보하려 파격적인 경품행사를 벌였다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된서리를 맞았다. 회사 측은 구매고객을 대상으로 추첨해 당첨자에게 기아차 ‘레이’를 주려고 했지만 차 가격이 1000만 원 이상으로 경품한도(500만 원)를 넘어 공정위의 시정명령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백화점, 기업 등이 고객을 위한 추첨 이벤트에 1000만 원이 넘는 경품을 내걸 수 있게 됐다. 위축된 소비심리 완화 등을 고려해 공정위가 ‘경품 규정’을 대폭 완화했기 때문이다.
○ 2000만 원까지 경품 지급 가능
공정위는 경품고시를 개정해 7일부터 ‘소비자 현상(懸賞)경품’의 한도액을 기존 500만 원에서 2000만 원으로 올린다고 6일 밝혔다. 소비자 현상경품이란 상품 또는 용역을 거래한 뒤 구매자를 대상으로 추첨 등을 통해 나눠주는 경품이다. 한 번에 줄 수 있는 경품의 총액제한도 ‘예상 매출액의 1% 이내’에서 ‘3% 이내’로 상향 조정했다.
추첨 없이 모든 구매자에게 주는 ‘소비자 경품’과 상품 구입과 관계없이 누구나 응모할 수 있는 ‘공개 현상경품’에 대한 규제는 이미 규정이 폐지됐다. 공정위가 유일하게 남은 규제인 소비자 현상경품의 한도를 높인 것은 2005년 이후 7년 만이다.
공정위 당국자는 “인터넷 보급 등으로 소비자들이 구매하려는 상품 가격을 쉽게 비교할 수 있게 돼 업체들이 과도한 경품으로 소비자를 유인한 뒤 경품비용을 판매가격에 전가할 우려가 줄었다”고 개정의 취지를 설명했다. 또 경품규제 완화가 기업의 마케팅 기회를 확대하고 소비심리를 끌어올려 경기침체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관련 업계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히 새롭게 시장에 뛰어드는 업체의 경우 경품을 통한 창의적인 마케팅으로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기회를 얻게 됐다. 한 대형 백화점 관계자는 “업계의 불황을 타개할 수 있는 공격적인 마케팅이 가능해졌다”며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은 자동차, 고가 미술품 등의 경품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 경기불황 때마다 규제 완화
경품 제한 규정은 1982년 처음 만들어진 후 지금까지 총 11번 바뀌었다. 최초 규정에는 경품가격을 구매한 상품의 가격에 따라 1만∼5만 원으로 제한했고 한 업체가 1년에 3번 이상 경품 행사를 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1997년에 상품의 구매 여부와 관계없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개 현상경품에 대한 규정이 폐지되자 당시 롯데백화점과 쌍용건설은 백화점 방문고객 중 추첨을 통해 29평형 아파트를 경품으로 주기도 했다.
경품 규제는 경기의 영향을 받는다. 공정위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경제활성화 차원에서 경품 관련 규제를 대부분 풀었다가 시민단체들의 반발로 2000년에 되살렸다.
규제 완화로 고가경품 경쟁이 과열되면 자칫 사행심리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이에 대해 공정위 측은 “규제완화 이후 시장의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 할 것이며 3년 후 규제수준을 재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기침체 상황에서는 고가경품이 내걸려도 소비자를 끌어모으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요즘 같은 때에는 추첨을 통해 비싼 경품을 주기보다 경품의 단가를 낮춰 많은 사람들에게 생활필수품 등을 사은품으로 주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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