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에서 계열 분리를 한 달가량 앞두고 있던 2003년 10월 어느 날. LS그룹 공동 창업주 중 한 명인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은 장남인 구자홍 LS그룹 회장과 차남 구자엽 LS산전 회장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회장직을 독점하려는 욕심을 버리라는 뜻이었다.
한 달 뒤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구태회 명예회장과 구평회 E1 명예회장(2012년 별세),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2011년 별세) 등 3형제는 LS그룹을 만들었다. 3형제는 구자홍 회장을 LS그룹 초대 회장으로 정하면서 사촌에게 회장직을 계승케 하는 ‘사촌 경영’ 원칙에 합의했다. LS그룹 공동 창업주들은 이후에도 2세들이 이를 지키도록 누차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햇수로 10년. 구자홍 회장은 부친과 작고한 두 작은아버지가 한 약속을 지켰다. 창립 10주년 기념일인 11일 차기 회장직을 고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장남인 구자열 LS전선 회장에게 넘기기로 한 것이다. 구자홍 회장의 첫째 동생 구자엽 LS산전 회장과 둘째 동생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은 구자열 회장보다 나이가 많지만 사촌동생을 그룹의 새 회장으로 추대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간에도 경영권 싸움을 벌이는 일이 흔한 한국의 재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LS그룹의 독특한 지분 구조도 1세대 3형제 간 공동 경영을 가능하게 했다. 3형제는 지주회사인 ㈜LS의 특수관계인 지분 33.43%를 나이 순서대로 ‘4 대 4 대 2’로 나누고 이를 다시 자식들에게 적절히 분배했다. 사촌들은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그룹 경영은 물론이고 집안의 대소사를 논의하고 있다.
구자홍 회장은 “LS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만큼 더 역동적이고 능력 있는 경영인이 제2의 도약을 이뤄야 할 때이며, 구자열 회장이 최적임자라고 믿는다”며 “차기 회장과 LS의 도약을 위해 힘을 모으는 모범적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구자홍 회장은 이사회 중심의 책임경영과 투명경영 체제를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업인 전기·전자·소재·에너지 분야에서 계열 분리 당시보다 매출은 4배, 세전순이익은 3배, 기업가치는 7배로 늘려 LS를 재계 13위 그룹으로 키워냈다. 지능형 전력망(스마트그리드), 신재생 에너지, 전기자동차 부품, 해외자원 개발 등 녹색 비즈니스를 차세대 핵심사업으로 육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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