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수하물, 컨베이어에서 기내까지의 여정
최고 초속 7m 운반시스템, 시간당 5만6520개 수하물 처리
《저는 ‘여행가방’입니다. 어젯밤 꾹꾹 눌러 담은 옷가지며 여행용품들 때문에 속이 더부룩하군요. 그래도 매번 하늘길 여행에 오를 때마다 설레는 기분에 콧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롤러코스터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리죠. 인천국제공항 수하물처리시스템(BHS·Baggage Handling System)은 이용할 때마다 기분 좋은 곳이지요. 벨트 미끄럼틀을 흘러가는 내내 만나는 3만5700개의 감지 센서는 이탈 없이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우리를 지켜줍니다.》 초속 7m로 움직이는 고속운반로는 BHS에 처음 온 여행가방에게 꼭 추천해 주고 싶을 만큼 짜릿한 코스입니다. 비행기 안에서 만날 세계 각지의 친구들도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출발할 때가 됐네요. 저 수하물과 함께 26분간의 BHS 여행을 함께해 보시지 않겠어요?
○ 총길이 88km, 인천국제공항 BHS의 세계
2일 오후 인천공항 3층 항공사 카운터에서 한 승객이 맡긴 여행가방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였다. 항공사 직원은 빠른 손놀림으로 가방 손잡이에 2개의 태그 스티커를 달았다. 벨트 위에 놓인 짐들은 혹시나 위험물질은 없는지 2개의 검색대를 차례로 통과했다.
흔히 라이터나 스프레이처럼 불이 붙을 수 있는 발화성 물질만 짐에 넣지 않으면 된다고 알고 있는데 현금이나 각종 정보기술(IT) 기기도 가능하면 직접 기내에 들고 타는 편이 낫다. 짐을 잃어버렸을 때 항공사는 내용물과 상관없이 중량이나 인원에 따라 보상해 주기 때문이다. 보상금은 보통 수하물 1kg당 20달러(약 2만1800원) 수준이다.
3층 항공사 카운터에서 맡겨진 수하물이 2층으로 내려왔다. 기자는 2층 BHS센터를 취재하기에 앞서 까다로운 신원 확인 절차를 거쳐 신체 수색도 받아야 했다. 마치 무균실 병동에 들어가는 듯했다. 인천공항 관계자는 “수하물 운송 도중에 위험물질이 투입되는 것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2층 운반로로 들어가니 3개의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들어오는 수하물의 모습이 보였다. 각양각색의 여행가방과 모양도 제각각인 화물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이동했다.
1, 2단계 검색 과정에서 폭발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된 수하물은 2층에서 별도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
3단계 폭발물 정밀검색을 통과하지 못한 수하물은 4단계에서 시료 채취 검색을 거친다. 그래도 위험성이 감지되면 5단계로 폭발물 처리반이 출동해 짐을 처리한다. 하지만 인천공항 개장 이래 위탁 수하물에 대해 폭발물 처리반이 출동한 적은 없다.
검사를 거쳐 BHS에 안착한 수하물은 지하 1층을 거쳐 탑승구별로 분류된다. 구간마다 서 있는 파란색 감지 센서는 한 곳에 12개씩 설치돼 상하좌우에서 바코드 태그를 자동으로 인식한다. 승객이 맡긴 수하물은 약 1∼2km를 이동해 평균 17분 만에 화물 탑승장에 도착한다. 일부 외국항공사의 탑승동은 1km 더 떨어져 있지만 중간 구간에 초속 7m로 움직이는 고속운반시스템을 설치해 화물 탑승장까지 오는 시간을 최소화했다. 인천공항 BHS의 전체 길이를 합치면 약 88km로 이는 서울에서 충남 천안까지 가는 거리와 비슷한 수준이다. 시간당 처리되는 수하물은 약 5만6520개에 이른다.
○ 승객 고려해 기내에 수하물 탑재
BHS를 거쳐 화물 탑승장에 도착한 수하물은 항공사별로 운송회사가 맡아서 운반차량에 싣는다. 이코노미석 승객의 수하물은 탑승장에 도착하는 대로 해당 항공기로 향한다. 대개 일찍 체크인한 수하물의 경우 기내 컨테이너 안쪽에 실린다. 탑승수속을 일찍 마칠수록 보통 짐이 늦게 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수하물이 도착 순서대로 기내에 실리는 것은 아니다. 수하물 배치를 담당하는 로드마스터들은 항공기 기종, 탑승객 수, 탑승 클래스, 수하물 무게 등을 고려해 기내 컨테이너에 어떻게 짐을 배치할지를 결정한다.
이날 오후 4시 기자가 찾은 인천공항 주기장(駐機場)에는 출발을 앞둔 일본 오사카행 아시아나항공 ‘A330’ 항공기에 대한 수하물 적재 작업이 한창이었다. 로드마스터는 무거운 짐을 뒤쪽에 실어 항공기의 무게 중심을 잡고 있었다. 이 항공편에는 전체 290개의 좌석 가운데 68%에 해당하는 167명의 승객만이 탄 데다 대부분 앞쪽 좌석에 앉은 터였다.
승객들이 맡긴 수하물뿐 아니라 항공화물도 항공기 무게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한다. 보통 한 항공기에 실리는 수하물 중량은 400∼500kg인 데 비해 일반 화물은 2000∼4000kg에 이른다. 아시아나항공 로드마스터 부서를 총괄하고 있는 백영민 차장은 “컨테이너 공간, 급유량 등 정해진 조건 내에서 최적화된 화물 배치를 하기 위해 담당 직원들은 까다로운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증도 따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앞쪽 컨테이너에는 11.9t, 뒤쪽에는 약 13.5t의 짐이 실렸다.
값비싼 좌석을 구입한 일등석, 비즈니스석 승객이나 항공사 우수회원의 짐은 화물칸에서도 대접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짐을 내릴 때 뒤쪽 컨테이너에서부터 시작하는 만큼 뒤쪽 컨테이너 입구 ‘42R’ 칸이 이들 손님을 위한 명당자리로 남겨진다. 짐 찾는 곳에서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 승객의 짐이 먼저 나오는 이유다.
수하물을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 항공사를 경유해 이동하는 승객이었다면 최종 이용 항공사에 문의해야 한다. 보통 수하물의 위치를 확인할 때는 최종 목적지에서 역(逆)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추적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인천공항의 수하물 미탑재율은 0.0039%로 유럽 평균(0.0198%)의 5분의 1, 미국 국내선(0.0068%)과 비교하면 2분의 1 수준이다. 매년 31회의 정기검사와 직원 교육, 그리고 까다로운 국내 승객의 눈높이에 맞추다 보니 실력도 세계 최고가 됐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원활한 수하물 운송을 위해선 이전 비행 때 가방에 붙인 태그를 미리 떼어놓고 컨베이어 벨트에 걸리지 않게 가방 끈을 잘 묶거나 가방 바퀴가 위쪽으로 가도록 맡기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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