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반포동 전용면적 47m² 아파트에 사는 직장인 최모 씨(43)는 지난해 말 재계약을 할 때 기존 전세계약을 보증금부 월세(반전세)로 바꿨다. 2억1000만 원이던 전세금을 2억4000만 원까지 올려주겠다고 했지만 집주인이 월세계약을 강하게 고집했기 때문이다. 최 씨는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 6000만 원을 돌려받았고 대신 매달 60만 원의 월세를 주고 있다.
최 씨 사례처럼 주택임대시장에서 월세(보증금부 월세 포함)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저금리와 인구구조 변화, 부동산시장 침체 등으로 임대시장에서 차지하는 월세 비중이 한때 국내 주택임대차계약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전세를 추월하고 장기적으로는 전세제도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 월세 비중 10년 만에 15%포인트 증가
농협경제연구소는 12일 ‘국내 주택임대시장 변화’ 보고서를 통해 2000년 전체 주택시장에서 28.2%를 차지했던 전세 비중이 2010년 21.7%까지 하락한 반면에 월세 비중은 14.8%에서 21.4%로 늘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체 임대시장에서 차지하는 월세 비중도 34.4%에서 49.7%로 급증해 사실상 전세와 월세의 비중이 같아졌다.
송두한 농협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장은 “금리 하락으로 전세보다 월세 수익률이 높아진 데다 부동산시장 불황에도 불구하고 전세금은 꾸준히 오르고 있어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월세를 택하고 있다”며 “월세 거주형태가 대부분인 1인 가구도 증가하고 있어 전세에서 월세로의 임대시장 재편이 빠르게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평균적인 월세 부담이 낮아지면서 전세에서 월세로 이동하는 비용이 줄어든 것도 수요자들의 월세 선호를 부추기고 있다. 2002년 14.0%였던 전월세전환율(월세를 전세금과 월세보증금의 차액으로 나눈 비율)은 2011년 11.1%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서울의 전월세전환율도 12.1%에서 9.9%로 하락했다. 전월세전환율이 낮아졌다는 것은 월세가격이 싸지고 전세가격은 비싸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 임대서비스업-공공임대 늘어날 것
전문가들은 월세 확대와 전세 축소 현상이 단순히 임대시장 재편으로만 그치지 않고 한국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평가한다.
강선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임대시장에 월세제도만 남는다면 매년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15조5000억 원의 현금을 임차료로 지불해야 한다”며 “그만큼 세입자의 가처분소득과 소비가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월세 소득을 얻은 집주인이 소비를 늘리면 소비 둔화 영향이 상쇄될 것이라는 의견이 있지만 고소득층인 집주인이 소비를 늘리는 플러스 효과보다 중산층인 세입자가 소비를 줄이는 마이너스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집주인이 직접 세입자를 구하고 임대료를 받는 현재의 임대시장이 세입자 알선, 임대료 징수, 주택 관리 및 보수, 청소·세탁서비스 등 종합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형 주택임대관리사업자들의 주무대로 바뀔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강 연구위원은 “주거 서비스의 질과 임대료 격차가 지금보다 훨씬 커지면서 자금여력이 충분치 않거나 보유 주택의 질이 좋지 않은 상당수 집주인은 임대용 주택을 처분할 것”이라며 “정부가 이 물량의 일정부분을 매입해 공공임대로 활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노희순 주택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전세를 끼고 주택을 구매한 집주인의 상당수는 월세 전환을 하고 싶어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충분한 자금능력이 없다”며 “수도권 임대시장이 월세 중심시장으로 바뀌려면 15∼20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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