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6일 추석 연휴를 며칠 앞두고 명절 분위기로 들뜬 오후 극동건설의 부도 소식이 날아들었다. A레미콘사의 분위기는 의외로 차분했다. ‘납품 못 하겠다’고 항의했더니 극동건설이 ‘정 불안하면 자재구매대행(MRO)사업을 하는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로 납품해라’고 설득해 2011년 1월부터 웅진홀딩스에 자재를 납품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분함은 곧 충격으로 바뀌었다. 웅진홀딩스도 함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소식이 곧이어 전해진 것이다. A레미콘 관계자는 “웅진은 그룹 이미지도 좋고 해서 당연히 믿었는데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고 허탈해했다.
극동건설은 지난달 11일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회생의 기회를 잡았지만 협력사들이나 하청업체들의 고난은 한층 심화되고 있다. 법정관리는 금융회사와 채권단은 물론이고 하도급업체와의 거래대금 상환까지 모두 동결하기 때문이다.
○ 하청업체들, 자금줄 막혀 법원만 쳐다봐
S건설도 극동건설로부터 100억 원 상당의 공사를 받아 준비하다 극동건설의 법정관리 시작으로 늪에 빠져 있다. 공사현장에서는 바로 철수했지만 극동건설 탓에 물린 돈만 2억 원가량에 이른다. 전문건설공제조합에 계약이행보증금으로 전체 공사금의 1%인 1억 원 정도를 낸 데다 사무실 개설비 등으로 1억 원 정도가 들어갔다. 이 건설사 관계사는 “하루 빨리 이행보증금을 돌려받으려면 극동건설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법정관리 중이라 언제 동의해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철강, 레미콘 같은 원자재를 공급하는 협력업체들에 비하면 S건설의 피해는 약과다. 철강업계와 레미콘업계가 극동건설에서 받지 못한 돈은 각각 230억 원, 150억 원에 이른다. 보통 협력업체가 납품하면 한 달 뒤에나 건설사가 4∼5개월 만기 어음이나 외상매출채권을 발행한다. 협력업체가 납품 대금을 받기까지 5∼6개월이 걸려 외상이 계속 쌓여가는 구조다.
당장 현금이 급한 협력업체는 어음을 할인해 현금을 끌어 쓰거나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원청업체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담보대출은 협력업체가 갚아야 한다. A레미콘사 측은 “담보대출로 미리 사용한 5억 원을 이제 우리가 갚게 됐다”며 “담보대출을 갚으려고 일부 중소업체들은 연리 20%의 사채까지 끌어다 쓴다”라고 전했다.
○ 대형 건설사도 허리띠 졸라매
문제는 또 어느 업체가 또 무너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협력업체들이나 하도급업체들은 시장의 소문에 귀를 쫑긋 세우고 각 건설사들의 최신 신용평가를 확보하느라 분주하다. 한 자재업체 상무는 “‘A사가 함바식당에도 돈을 미룬다더라’ ‘B사가 사채시장을 기웃거린다’와 같은 소문까지 다 모은다”며 “1주일에 한 번씩 명동 사채시장, 은행 등을 확인하고 있지만 불안감이 줄지 않는다”라고 털어놓았다.
대형 건설사들조차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S건설은 경기의 한 교량 건설 현장에서 추가로 발생한 비용 47억 원을 대형 건설사인 H건설에서 보전해주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공사 완료를 시기를 앞당겨 달라는 요청에 따라 인력을 대거 투입했다 발생한 비용임에도 H건설은 ‘대금은 애초 계약서대로 주겠다’며 요지부동이다.
이의섭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형 건설사의 법정관리 신청에 따른 하도급, 협력업체들의 연쇄 부도를 막기 위해 협력업체에 대한 대금 지급보증시스템을 만들고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의 상환부담이 협력업체에 전가되지 않도록 결제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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