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한 달 남기고 정부 부처 산하 공공기관들의 눈치작전이 본격화하고 있다. 대선후보들의 조직개편 공약이 불러올 태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정부정책을 현장에서 뒷받침하며 사실상 정부와 한 몸처럼 움직이는 공공기관의 특성상 상위 부처의 조직개편은 기관의 운명을 가르는 큰 변화다.
공공기관들은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대부처(大部處)제’ 도입 및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으로 통폐합과 대규모 조직개편을 겪었다. 미리 ‘생존 논리’를 준비하지 않을 경우 새 정부의 조직개편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이다.
아예 몇몇 공공기관은 조직의 영향력 강화를 위해 대선후보들의 부처 신설, 부활, 분할 공약에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다른 많은 기관도 정부 조직개편에 대비해 내부적으로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리는 등 대응 전략에 부심하고 있다.
○ 소속 기관들 부처 부활, 신설 지지
농림수산식품부 소속 기관인 수산업협동조합은 6일 어민, 수산업 관계자 등 8000여 명이 집결하는 ‘전국 수산인 한마음 전진대회’를 서울광장에서 열었다. 자유무역협정(FTA) 피해 보상과 해양환경 보전 등을 요구사항으로 내걸었지만 가장 강력하게 요구한 사안은 ‘해양수산부 부활’이었다.
이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 등 대선후보 3명은 모두 이 행사에 참석해 “해양과 수산정책을 총괄하는 해양부를 부활시키겠다”고 밝혔다. 정부 부처에 소속된 기관이 현재의 주관 부처를 “쪼개 달라”고 요구하며 대선후보들을 초청해 행사를 연 셈이다. 수협 관계자는 “해양부 폐지 이후 4년 동안 독립 부처가 없는 설움을 겪었다”며 “농식품부에 통합된 이후 어민 지원이나 수산정책은 농업 정책에 비해 뒷전으로 밀렸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지식경제부, 교육과학기술부 등 소속 부처 내 업무의 중요도에서 ‘2선’으로 밀렸던 과학기술 연구소들도 ‘과학기술부 부활’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과학기술연구자들의 모임인 ‘출연연 연구발전협의회 총연합회’는 9월에 “모든 출연연구소를 위원회나 부총리 소속의 과학기술 종합조정부처 소속으로 일괄 이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 정부 들어 한국과학재단과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 등 3개 기관이 통합돼 만들어진 한국연구재단 관계자는 “현 정부 전까지 연구개발(R&D) 예산은 과기부가 총괄해 집행했다”며 “독립적인 과학 부처가 있어야 전문성이 없는 경제 관료들이 R&D 예산을 깎고 늘리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 직급 따라 엇갈리는 경우도
국책 금융기관들도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통합 움직임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대선을 앞둔 학계와 관가에서는 재정부와 금융위로 나뉜 금융정책을 다시 재정부에 흡수 통합시키자는 논의가 힘을 얻는 추세. 이와 함께 국책 금융기관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수출입은행(재정부 소속), 정책금융공사(금융위), 무역보험공사(지경부) 등으로 흩어진 기능을 통합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수출입은행은 내부 TF를 조직해 국책 금융기관 통합론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대응논리를 개발하고 있다. 수은 내부에서는 “덩치가 가장 큰 수은이 통합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책금융공사는 중립적인 태도지만 무역보험공사는 통합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편이다.
같은 조직 안에서도 직급에 따라 조직개편에 대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경우도 있다. 지경부 산하 우정사업본부는 공식적으로 ‘청(廳) 단위 승격’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고위공무원 진급을 원하는 우정사업본부의 고위직 중에서는 지경부 소속 기관으로 남길 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하위직들은 소속 부처의 승격이 반길 일이겠지만 고위 직급에 있는 사람들은 움직일 ‘자리’가 더 많은 지경부 소속으로 남는 걸 선호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소속 부처 변경에 염증을 내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한 지경부 산하 공기업 관계자는 “5년마다 부처가 바뀌고 그때마다 부처 공무원과 산하기관 직원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나라가 우리밖에 더 있느냐”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부처, 소속 기관들이 이리저리 이동하는 건 이제 그만둬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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