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석동빈 기자의 DRIVEN]K3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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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신상담 20년… 준중형차 시장의 새로운 시대 열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중형차는 중소기업 사장이나 대기업 임원 정도는 돼야 탈 수 있었다. 공무원이나 일반 회사원이라면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고 해도 주위의 눈치 때문에 중형차를 타기가 힘든 시대였다.

자동차회사 입장에서는 소형차 중형차 대형차 3가지 차종만으로 판매량을 늘리거나 수익을 올리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 자동차회사들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준중형’이라는 클래스를 만들었다. 1990년 탄생한 현대자동차 ‘엘란트라’가 최초의 준중형차다. 소형차보다 크기를 약간 키우고 편의장치를 고급화해서, 중형차를 사고 싶지만 사회적 여건 때문에 머뭇거리는 소비자들을 흡수했다.

기아자동차도 1992년에 준중형급 ‘세피아’를 내놨다. 세피아는 날렵한 디자인에 달리기 실력이 좋아 엘란트라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현대차가 1995년부터 내놓은 아반떼 시리즈에 눌려 기아차의 준중형 세단들은 빛을 보지 못했다. 기아차가 세피아 이후 내놓은 ‘세피아2’, ‘스펙트라’, ‘세라토’, ‘포르테’ 모두 아반떼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기아차가 20년간 엘란트라-아반떼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한 설움을 떨쳐내기 위해 새롭게 준중형차를 세상에 내놓았다. ‘K3’다.

○ 기아차의 강력한 ‘신병기’

K3는 판매 한 달 만인 10월에 7632대가 팔리며 국내 자동차 모델별 판매순위 3위에 올랐다. 1위 아반떼의 9729대에 바짝 따라 붙었다. K3는 출시 후 34일 만에 계약 2만 대를 돌파하며 성공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기존 모델인 포르테와 무엇이 달라졌기에 판매가 몇 배로 뛰었을까.

일단 디자인 측면에서 훨씬 고급스러워졌다. 아반떼와 같은 플랫폼(차체 뼈대)을 사용하지만 볼륨감을 키워 중형차 느낌을 주고, 부드러운 곡선과 직선을 적절하게 섞어 세련미를 더했다. 특히 전면의 인테이크 그릴과 전조등, 후면의 제동등을 차체에 비해 크게 설계해 확실한 존재감을 선사한다.

사이드미러와 도어 외부 손잡이, 면발광 타입 주간 주행등 같은 디자인 소품들도 고급스럽게 다듬어서 디테일을 신경 쓰는 소비자들을 만족시켰다. 전체적으로 차체 각 패널과 부속품 간의 연결이 매끄러워서 과거 어딘지 모르게 어설펐던 단점이 많이 사라졌다.

인테리어도 마찬가지다. 각종 스위치나 다이얼, 송풍구 같은 부속품과 패널이 따로 노는 느낌 없이 일체감을 주며 경계선의 이빨이 꼭 맞아떨어진다. 손으로 작동하는 각 부품의 디자인은 물론이고 터치감도 좋아졌다. 대시보드의 마감 재질도 딱딱한 플라스틱 소재의 사용을 줄이고 부드러운 소프트 스킨을 많이 사용해 싸구려 같은 분위기를 없앴다.

가죽시트의 디자인과 바느질도 꼼꼼해졌고 심지어 계기반 위의 클러스터 페시아와 중앙 팔걸이를 가죽으로 감싸 대형차급의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 동력 성능은 중형차에 근접


소형차 엔진이 들어간 준중형은 늘어난 차체 무게 때문에 때로는 답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1.6L급 GDI엔진이 들어간 K3는 과거 2.0L급 DOHC 중형차 이상의 운동성능을 보여줬다. 정밀장비로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이르는 가속시간을 여러 번 측정한 결과 9.8∼10.2초가 나왔다. 평균 10초 정도는 가능해 보였다. 2000년대 후반까지 2.0L급 중형차의 가속시간은 11∼12초 수준이었다. 10초 만에 시속 100km를 돌파하는 차라면 가파른 고갯길에서도 힘이 부족해 고개 숙일 필요가 없다.

운전대를 움직였을 때 차가 운전자의 명령에 얼마나 빠르게 반응하는지를 나타내는 핸들링과 커브길을 안정적으로 잘 달리는 정도를 말하는 코너링은 평범한 운전자의 입맛에 맞게 조율돼 있다.

승차감 역시 패밀리세단의 성격에 맞게 너무 물렁거리지도 튀지도 않는 수준으로 맞춰졌다. 타이어, 엔진, 바람 소리도 잘 걸러내서 중형차와 비슷한 정숙성을 보였다.

자동 6단 변속기의 성능도 평균 수준 이상이었다. 급가속 때 가볍게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엔진과 변속기의 동력 직결감이 좋아졌으며 변속 속도 역시 빨라졌다. 국산 준중형차에는 이례적으로 변속 단수를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운전대 옆 패들시프트가 들어갔는데, 변속 단수를 내리면 제법 빠르게 반응했다. 과거 현대·기아차의 H매틱 변속기가 임의로 단수를 바꿔도 너무 반응이 늦어 하품이 날 지경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발전이다.

전자식스티어링 시스템을 도입하고 난 뒤 운전대가 너무 가벼워서 주차 때는 편하지만 고속주행 시에는 불안감을 준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을 감안한 듯 콤포트, 노말, 스포츠 3단계로 운전대의 무게감을 조절하는 버튼을 넣은 것도 포인트다.

연료소비효율(연비)은 일반적인 서울시내 주행에서 L당 11km 안팎, 시속 100km로 고속도로를 정속 주행했을 때는 16km 안팎이 나왔다. 시내와 고속도로 주행을 절반씩 했을 경우 L당 13km대가 나와 공인 연비인 14km와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 과분할 정도의 편의장치


K3의 운전석에 앉았을 때 깜짝 놀란 것이 여러 개 있다. 고급 수입차에서나 볼 수 있던 운전석 시트 메모리와 시트 통풍 장치다. 상급 차종에서만 누릴 수 있던 고급 편의장치가 모두 적용된 것이다. 뒷좌석도 열선 시트를 넣을 수 있다. 이 밖에도 △경사로 밀림 방지 장치 △후방충격 저감 시트 △타이어 공기압 경보 시스템 △급제동 경보 시스템 △차량 앞 유리의 습기를 자동으로 제거해주는 오토 디포그 시스템 △글로브 박스 쿨링 기능 등 준중형차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편의·안정장치를 선택할 수 있다. 게다가 트렁크도 중형차급으로 넓어서 골프백 4개와 보스턴백 4개를 동시에 실을 수 있다고 한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은 연료가 떨어지면 주유 안내와 함께 자동으로 가까운 주유소가 L당 가격과 함께 주르륵 나타난다.

○ 종합 평가

K3는 국산 준중형차 시장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봐도 된다. 차체 크기만 약간 작을 뿐이지 중형차급의 운전 성능과 편의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사실 실내 공간도 10여 년 전의 중형차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어서 4인 가족이 함께 쓰는 패밀리카로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가격 역시 과거 중형차급. 1345만 원부터 시작하지만 웬만한 편의장치를 넣으려면 1700만 원 정도는 줘야 하고 풀옵션 모델은 2145만 원에 이른다. 성능과 편의성이 좋아진 만큼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가격 외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승차감을 좋게 하기 위해 소음이 적고 부드러운 타이어를 넣었는데 대신 안정감이 약간 떨어져서 스포티한 주행에는 한계를 드러낸다. 고속주행용으로 만들어진 세단이 아니기는 하지만 속도를 높여보면 차체의 견고함도 아직 평균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시승차만의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저속에서 가속할 때 엔진커버가 떨리는 듯한 소음이 약하게 들린다. 운전대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게 바꾸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장난감 운전대를 돌리는 듯한 기계적인 성능은 그대로다.

일반 준중형급에서 이 이상의 차체 강성이나 성능은 오버 엔지니어링일 수도 있고 차 가격도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같은 가격에 잠재력이 더 뛰어난 차를 원하는 것은 영원한 소비자의 마음이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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