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전 오늘을 내다본 유일한 박사의 CSV경영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2일 03시 00분


  

《“양질·염가의 제품생산, 이것은 기업 성취의 ABC인 동시에 기업의 사회에 대한 책임이다. 기업은 사회의 이익 증진을 위해서 존재하는 기구다.”》

유한양행을 세운 유일한 박사(1895∼1971)는 9세 때인 1904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대를 졸업하고 대학 동창인 월레스 스미스와 창업을 했다. 품목은 숙주나물이었다. 신선도를 유지하면서 숙주나물을 오래 보관한 수 있는 열처리 방법을 개발해 장사가 잘됐다. 주문은 창업 인근 지역인 디트로이트와 시카고뿐만 아니라 펜실베이니아와 뉴욕에서도 들어왔다. ‘라초이(La Choy Co.)’라는 이름의 회사는 갈수록 번창했다.

30세가 되던 1925년 그는 회사일로 중국과 동남아를 방문했다가 잠시 고국에 들렀다. 21년 만에 직접 본 고국의 상황은 참담했다. 식민지 지배하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동포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한국으로의 귀국 절차를 밟았다. 유일한 박사는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있던 라초이를 스미스에게 넘기고 고국에서 새로운 기업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이듬해인 1926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국민의 보건 문제였다. 1920년대에 끼니를 잇지 못해 만주로 유랑하는 백성이 매년 4만∼5만 명에 이르렀다. 당연히 건강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전염병이라도 돌면 걷잡을 수 없이 죽어나갔고 의약품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유일한 박사는 라초이를 동업자에게 넘기며 받은 25만 달러로 의약품을 구입해 1926년 12월 10일 유한양행을 창립했다. 유한양행은 의약품을 주로 수입했지만 당초 국민 보건을 목적으로 설립했기 때문에 화장지 생리대 비누 치약 등 각종 위생용품도 수입해서 팔았다. 반드시 필요한 약품을 수입해 냉각장치를 갖춘 창고에 보관하다가 긴급한 환자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철도를 이용해 공급하는 체계까지 갖췄다.

유한양행의 사업은 당시의 다른 제약업체의 행보와도 비교된다. 당시의 업계가 마약류의 진통제를 주로 팔며 이윤 추구에 주력한 반면 유한양행은 보건제 피부병약 구충제 등의 가정상비약을 판매했다. 신문광고도 제약업계에 만연한 허위 과장 광고를 하지 않고 계몽적인 광고로 일관했다. 1930년 10월 30일자 동아일보 광고를 보면 약은 신뢰할 만한 의사와 상의해 사용해야 하며 유한양행이 그러한 좋은 약을 공급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유일한 박사는 의약품 수입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경기 부천 소사에 제약공장을 세우면서 저명한 화학자인 데이비드 발레트 박사를 초빙해 제약 기술책임자 자리를 맡겼고 이후 소사공장에서는 일본 제약회사의 의약품 품질에 못지않은 약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처럼 유한양행은 국민의 보건을 위하면서도 성장을 거듭해 1936년에는 자본금 75만 원의 주식회사로 전환할 수 있었다.

김선우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sublime@donga.com
김선우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sublime@donga.com
유일한 박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경영의 교과서와도 같은 인물이다. 유한양행이 본궤도에 오르자 재단을 세워 공익사업과 교육사업에 힘썼으며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CSR에 더해 그의 기업철학에는 공유가치 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의 기본개념이 녹아 있다. CSV의 요체는 전통적인 시장과 틀에 박힌 고객 니즈만을 공략하는 것이 아니라 빈곤 건강 환경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사회적 가치 창출과 이윤 창출의 기회를 동시에 갖는 것이다. 유일한 박사는 미국에서 번창하는 사업을 접고 참담한 현실의 고국에 돌아와 당시 사회에 무엇보다도 필요했던 의약품을 팔면서 수익도 창출했다. 만약 CSV 이론의 창시자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가 유한양행이라는 기업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포터 교수의 CSV 이론이 좀더 일찍 세상에서 빛을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경영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17호(2012년 11월 15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삼성SDI의 환골탈태

케이스 스터디



아직도 삼성SDI를 TV 브라운관 제조업체로 알고 있다면 오해다. 2000년대 들어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을 중심으로 하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업체로 세계시장을 석권했다가 최근에는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또 한번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매출의 절반 이상을 ‘에너지 및 기타’ 사업 부문에서 올렸을 정도로 그 시도는 성공적이다. 브라운관과 PDP, 2차전지 등 지금까지 거쳐온 사업영역 모두에서 삼성SDI는 후발주자였다. 하지만 발 빠른 적응력과 끊임없는 혁신으로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시장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삼성SDI의 진화 발전 과정을 집중 분석했다.

유용성에 재미를 입혀라

▼ 메타트렌드 아이디어


최첨단 기술과 화려한 기능을 갖춘 제품이 너무 많아졌다. 기능적 욕구를 채운 소비자들은 ‘보다 아름답게, 보다 재미있게’라는 새로운 가치를 우선순위에 둔다. 기능성을 따지지 않고 재미만으로 제품을 선택하기도 한다. 미국 기업 팝콘 인디애나가 만든 ‘팝피네이터’(사진)를 보자. 사람이 ‘팝’이라고 말하면 팝피네이터는 소리를 인식해서 정확히 그 방향으로 팝콘을 발사한다. 먹는 일을 재미있는 경험으로 발전시켜 소비자 만족도를 높인 좋은 사례다. 우리나라의 문승지 디자이너가 고안한 캣 터널 소파도 재미있는 제품이다. 좁고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의 습성을 반영해 소파의 등받이와 다리를 긴 터널로 제작한 이 제품은 소파를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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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유일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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