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의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올해 한국의 무역규모 순위가 8위로 상승한 것은 우리 기업들이 만든 제품들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와 수출지역 다변화 전략 등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세계경기는 좀처럼 살아날 줄 모르고, 각국이 자국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면서 교역은 더욱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원화가치가 계속 상승(원-달러 환율은 하락)하며 국제시장에서 한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것도 큰 고민거리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올 1∼10월 수출입 규모는 8884억 달러(약 968조3600억 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가량 줄었다. 하지만 독일(―6.3%) 프랑스(―6.0%) 이탈리아(―10.3%·이상 1∼9월 기준) 등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감소폭은 작은 편이다. 무역 절대액이 감소했지만 상대적으로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세계적 경기침체를 잘 극복한 셈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세계시장에서 높은 성과를 낸 한국 제조업체들의 공이 크다고 분석한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가 한국 업체에 오히려 ‘도약의 기회’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자동차는 유럽, 미국의 자동차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선진국뿐만 아니라 신흥국 시장에서 판매대수를 대폭 확대했다. ‘아이폰 쇼크’를 이겨낸 삼성전자는 올 3분기(7∼9월)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32.5%로 애플(14.0%)의 갑절이 넘는 휴대전화를 팔았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과거 한국 제품이 ‘가격 대비 실용성’으로 인정받았다면 이제는 기술력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며 “선진국이 주춤한 사이 기술력을 쌓아온 국내 업체들이 세계시장에서 꽃을 피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FTA 확대를 통한 정부의 무역개방 정책도 한국의 무역규모 순위를 끌어올리는 데 한몫했다. 9월 한미 FTA 발효 6개월을 맞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FTA 발효 이후 자동차부품, 섬유 등 관세가 인하된 수혜 품목의 수출이 13.5% 증가했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한 수출 다변화는 중국 미국 등에 대한 수출 부진을 메우는 역할을 했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에 대한 수출액은 작년 동기보다 7.3% 증가해 5대 수출 지역 중 가장 많이 늘었다.
전문가들은 “올해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았지만 내년 경기와 수출 전망은 더 안갯속”이라고 우려한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내년 상반기 스페인이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등 유럽 재정위기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 실장은 “중국의 최대 수출국인 EU의 회복이 늦어질 경우 내년 중국의 성장세도 그만큼 꺾일 것이고, 이는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 세계 국가들이 최근 각종 수입규제 등 비관세 장벽 강화, 관세 인상 등 보호무역 경향이 강화되는 것도 악재다. 유 본부장은 “삼성전자에 대한 특허 소송, 현대차 연비 논란 등은 선진국 시장에서도 한국 기업에 대한 견제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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