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 보따리상 다 어디로 갔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7일 03시 00분


경기 평택항 여객터미널 수탁화물 접수장은 지난해까지 다이궁들이 중국에 보내는 화물로 붐볐다(왼쪽 사진). 하지만 이곳은 올해 5월
 중국 세관이 통관을 강화한 이후 텅 비어 현재는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평택항 소무역상인연합회 제공
경기 평택항 여객터미널 수탁화물 접수장은 지난해까지 다이궁들이 중국에 보내는 화물로 붐볐다(왼쪽 사진). 하지만 이곳은 올해 5월 중국 세관이 통관을 강화한 이후 텅 비어 현재는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평택항 소무역상인연합회 제공

인천항과 평택항을 중심으로 활발하던 한국과 중국 간 ‘다이궁(代工·보따리상)’ 무역이 빠르게 쇠퇴하고 있다. 중국 세관당국이 1인당 50kg 한도 내에서 큰 제재 없이 통과시켜줬던 수하물 반입을 5월부터 막고 있기 때문이다. 식음료와 공산품 분야에서 중소기업 제품의 대중국 수출이 영향을 받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 중국인 선호 제품 매출 급감

인천항 부근에 위치한 이마트 동인천점은 보따리상과 중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쇼핑 장소다. 이곳은 이마트의 147개 점포 가운데 매출 순위가 53위에 불과하지만 중국에서 인기 있는 병소주(9위), 국산 담배(11위), 유자차 등 액상차(8위), 커피믹스(10위), 프라이팬(3위) 등은 10월 말 현재 매출 순위가 최상위권이다. 하지만 중국이 통관을 강화하면서 이들 상품의 매출은 많게는 10% 이상 줄었다. 10월 1일∼11월 20일 병소주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3% 감소한 것을 비롯해 초콜릿(―6.7%), 전기주전자(―5.8%), 헤어 제품(―9.8%), 인삼류(―12.8%) 등의 매출이 줄었다. 다른 점포에선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추위로 난방용품 매출이 늘어났지만 동인천점의 전기장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1% 급감했다.

○ 다이궁 무역에 등 돌린 중국

중국은 통관을 강화하면서 2002년 제정된 중국해관총서 수출입통관지침을 근거로 내세웠다. 지침에 따르면 주류, 공산품, 수탁화물은 반입 금지 대상이다. 만들어진 지 10년 된 이 규정을 중국이 갑작스레 꺼내든 데 대해 관련 업계에서는 “4, 5년 전부터 다이궁 무역의 구조가 중국에 불리해졌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여객선을 통한 한중 무역이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보따리상들은 값싼 중국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주력했다. 중국 당국은 외화벌이 창구인 보따리상의 불법을 눈감아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중국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한국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다이궁이 관세를 내지 않고 휴대전화, 전기밥솥, 전기장판 등 공산품과 식음료를 반입하면서 중국으로선 농산물 판매 수입의 몇 배씩 되는 외화를 한국에 보내게 된 것이다.

중국 사정에 밝은 한 무역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한국 및 일본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준비하면서 무역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음지에서 이뤄지는 다이궁 무역을 일단 막을 필요가 생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중국 기침에 ‘몸살’ 난 평택

중국의 통관조치 강화로 평택항이 직격탄을 맞았다. 인천항은 다이궁이 전체 여객선 탑승객의 20% 정도지만 평택항은 90%에 이르기 때문이다. 중국 내 4개 지역으로 매주 47회 여객선이 오가는 평택항에선 여객선 선사들이 다이궁들에게 일반 승객에 비해 40%가량 할인된 운임을 적용한다. 평택항에선 올 초까지만 해도 2300명가량의 다이궁이 활동했지만 최근에는 그 수가 1500명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중국이 다이궁에 대해 개인 물품 외에는 못 가져오게 하자 중국으로 보내는 화물은 아예 끊겼다. 한때 평택시가 수하물 탁송 업무를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해 여객터미널 옆에 지은 가건물은 주차장으로 전락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으로 가는 수하물이 산더미처럼 쌓였던 곳이다. 다이궁을 상대로 영업하던 3곳의 환전상 가운데 두 곳은 문을 닫았고 한 곳만 인근 건물로 옮겨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평택항에서 만난 다이궁들은 “불법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한국 식품과 화장품을 중국에 소개하는 첨병 역할을 해왔다”고 입을 모았다. 동서식품의 커피믹스나 아모레퍼시픽 화장품처럼 중국에서 잘나가는 제품들은 자신들이 중국시장에 샘플을 갖다 팔면서 시장점유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10여 명의 다이궁을 고용한 한 무역업체 사장은 “다이궁 무역이 막히면 앞으로 한국 중소기업 제품이 중국 시장에서 인기를 끌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택=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