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 방법에 대한 불신은 전통시장을 찾는 소비자들이 가장 불편하게 여기는 대목이다. 게다가 노점상이라면 아예 신용카드 사용은 포기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금이 부족할 경우엔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한 불쾌한 상황을 감내해야 한다.
“전통시장이 다양한 방법의 결제수단, 특히 모바일카드처럼 현대화된 결제수단의 사용이 손쉬워진다면 지속적인 성장도 가능합니다.”(BC카드 이강태 사장)
BC카드는 전통시장 시설 현대화 사업에 ‘결제 시스템 개선’을 포함시킨 주역 가운데 하나다. 현대식 화장실이나 주차장과 마찬가지로 ‘카드 결제 역시 인프라 가운데 하나’라는 발상의 전환이 있었다. BC카드의 모기업인 KT는 꾸준하게 전통시장의 정보기술(IT) 환경 개선에 투자해 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BC카드는 다양한 결제 솔루션 보급에 기여해 왔다.
전국의 1500여 개 전통시장 가운데 ‘결제 인프라 구축사업’의 대표 파트너로 선정된 시장이 충북 청주 육거리시장이다. BC카드는 지난해 11월 KT, 중소기업청과 체결한 ‘전통시장 활성화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에서 전통시장의 결제 환경을 개선하기로 뜻을 모으고 실천에 돌입했다.
지난해 6월부터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하고 시범실시 시장을 물색한 끝에 중부권 대표시장인 청주 육거리시장을 파트너로 선택했다. 전국에서 최초로 전통시장 전용 상품권을 발행할 정도로 시장 선진화에 진취적이란 점을 높이 평가했다. 무엇보다 점포 1200여 개의 초대형 전통시장이란 점과 전국 교통의 요지인 청주라는 점도 고려했다.
TFT는 고객이 전통시장에서 일반적으로 느끼는 불편은 물론이고 육거리시장 전체 점포를 대상으로 결제 인프라 현황 분석에 돌입했다. 카드 단말기 도입 상점은 절반 남짓에 불과했다. ‘크게 필요성 못 느낌’(33%)이란 미온적 반응도 있었지만 ‘1만 원 이하 소액결제 많음’(25%)이나 ‘수수료 부담’(19%), ‘사업자등록증 부재’(9%) 등의 구조적인 이유도 상당했다.
반면 결제 방식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은 치솟고 있었다. ‘카드 사용 불편’(53%), ‘가격표시 불신’(23%), ‘포인트제도 부재’(13%), ‘영수증 없음’(6%) 등 결제 방식의 전근대성에서 비롯한 불만이 태반이었다. 고객과 점포주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일이 시급했다.
우선 BC카드는 카드 단말기 보급 확대를 위해 상인 설득에 나섰다. 카드회사에 대한 불신과 현대적 마케팅 방식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결국은 유지비용에 대한 고민이 절대적이란 점을 간파할 수 있었다. 단말기 보급을 위해서 지방자치단체(청주시)의 지원이 넘어야 할 산이었다.
드디어 9월 14일 BC카드는 청주시와 함께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모바일카드 결제가 가능한 결제 인프라 구축 사업의 서막을 올리게 됐다. 청주 육거리시장에 보급된 단말기는 신용 및 체크카드는 물론이고 BC카드에서 발급 중인 KS규격의 모바일카드도 사용할 수 있다. 순식간에 결제 방식이 대형마트와 동등해진 셈이다.
전통시장에 카드 단말기가 보급되자 BC카드와 육거리시장은 보다 과감한 모험에 나설 수 있었다. 신용카드 결제시스템을 이용한 상권 및 고객 분석을 통해 다양한 마케팅 활동에 나설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자연스레 전통시장에서만 사용 가능한 ‘온누리상품권’의 전자화폐 버전인 ‘온누리멤버십카드’도 국내 최초로 도입하는 시장이 됐다. 온누리멤버십카드란 충전형 선불카드(기명)로 전통시장에서만 쓸 수 있으며, 전통시장 상인들은 별도의 가맹점 수수료 없이도 사용이 가능하다. 소득공제 한도도 30%로 늘어났다.
기존 무기명 방식의 온누리전자상품권과는 달리 온누리멤버십카드는 기명식이므로 사용액이 쌓이면 이를 활용한 다양한 마케팅이 가능하다.
온누리멤버십카드는 대형마트 멤버십카드와 같은 전통시장 전용 카드로 전국 최초로 청주시 직원 1200여 명이 농협을 통해 단체로 발급받아 11월 28일 장보기 행사부터 사용할 계획이다.
BC카드는 주변의 상권 및 고객 분석 데이터를 기반으로 육거리시장 상인들에게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홈페이지, e메일 등의 채널을 이용해 다양한 전통시장 정보들을 고객에게 제공하는 마케팅 활동 지원 방안도 마련 중이다.
이강태 BC카드 사장은 “대형매장 못지않게 카드 사용이 용이해진 육거리시장은 미래의 젊은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면서 “앞으로도 IT 역량과 금융서비스를 결합한 모바일 솔루션을 제공해 전통시장과 상생의 길을 걸어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전국 첫 상품권 발행… 10만m² 터에 1200여개 상가 밀집▼ ■ 충북 청주 육거리시장
“중부권 최대 전통시장이란 자부심으로 혁신에 나서고 있습니다.”
1950년 이후 5일장으로 형성된 충북 청주의 대표적 전통시장으로 오늘날에도 10만 m²(약 3만 평)의 터에 1200여 상가가 밀집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수도권에 인접한 만큼 대형마트의 영향을 비교적 빨리 받았고 그만큼 혁신 노력도 치열했던 시장으로 손꼽힌다. 1990년대 후반 명절 대목마저 대형마트에 빼앗기기 시작하자 1999년 9개의 자그마한 번영회를 모아 ‘청주육거리시장 상인연합회’로 확대 개편하고 본격적인 대응에 착수했다.
이어진 혁신의 노력은 대한민국 전통시장의 모범이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종합정보시스템 구축(2001년), 아케이드 설치(2002년), 상품권 최초 발행(2003년), 루미나리에 사업(2007년), 제2주차장 건립(2008년) 등 일련의 혁신을 통해 현대식 유통시설에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다. 실제 이런 혁신을 바탕으로 2000년대 중반 이후 매출은 증가 추세다.
특히 2003년 청주시 14개 전통시장이 연합해 발행한 전국 최초의 전통시장 상품권은 ‘온누리상품권’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온누리멤버십카드’를 전국 최초로 시행하는 영예도 얻게 됐다.
최경호 상인연합회장은 “현대식 시설도 중요하지만 달라진 소비자의 지불 양식에 걸맞게 결제 시스템을 다변화하는 것도 중요해졌다”면서 “청주 육거리시장 어디서나 카드 결제가 당연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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