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상하이은행(HSBC) 서울지점, 골드만삭스자산운용, ING생명, 우리아비바생명. 이들은 한국에서 철수하거나 사업을 축소하려는 외국 금융회사이다.
이들이 이런 결정을 내린 표면적인 이유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본사 차원에서 진행되는 글로벌 구조조정이다. 하지만 해당 회사의 국내 실적 부진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게 금융업계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 같은 외국 금융사들의 잇단 철수 결정은 글로벌 금융회사의 아시아·태평양 본부를 유치해 한국을 동북아 금융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정부 계획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부진한 실적에 발목이 잡히다
한국에서 철수하거나 사업 규모를 줄이려는 외국 금융회사 중 ING생명을 제외한 세 곳은 모두 실적 부진에 시달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은 2011년 회계연도에 72억 원의 당기순손실로 외국계 운용사 중 가장 큰 적자를 냈다. 28일 방한한 마이클 에번스 골드만삭스 부회장은 이날 전광우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수익성이 좋지 않아 구조조정 차원에서 한국 철수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HSBC서울지점은 지난해 2000억 원이 넘는 당기순익을 올리기는 했지만 모두 기업금융 부문의 흑자를 통해서다. 소매금융은 오히려 적자였다. 우리아비바생명은 흑자를 내고는 있지만 국내 24개 생명보험회사 중 20위권에 머물 정도로 부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철수설이 끊이지 않는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도 실적 부진이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SC은행의 당기순이익은 2010년 3438억 원에서 지난해에는 2719억 원으로 줄었고 올해는 더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SC은행 관계자는 “이익이 줄고 미래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한국에서 더 사업을 할 이유가 있겠느냐는 전망에 잠잠해 질만 하면 철수설이 불거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규제와 ‘토종’ 금융회사의 벽에 막히다
까다로운 한국 정부의 금융규제와 ‘토종’ 금융회사의 높은 경쟁력도 세계 금융시장을 호령하는 이들 글로벌 금융회사가 유독 한국에서 맥을 추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다.
우리아비바생명은 설계사 조직은 최소화하고 은행을 통한 보험판매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수익의 극대화를 노렸다.
하지만 상황은 기대와 다르게 흘러갔다. 금융당국이 전체 보험 판매에서 방카쉬랑스 비중을 50%에서 25%로 축소하도록 규제하면서 영업전략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설계사 조직을 늘려야 했지만 삼성생명 등 국내 대형 보험사들이 버티고 있어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HSBC는 국내 토종 은행들에 밀려 지방자치단체나 대학 같은 기관 고객을 거의 확보하지 못했다. 조달금리가 높아서 소매금융을 통해서는 이익을 많이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도 발목을 잡았다.
한국 금융서비스 시장의 특성을 무시한 채 본사 중심의 경영을 고집한 것도 악재가 됐다. 본사가 한국법인(지사)으로부터 정보기술(IT)시스템 사용료와 각종 정보 제공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 등을 과도하게 떼어간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법인의 수익구조를 악화시킨 것이다.
국민연금관리공단 고위 관계자는 “외국 금융사에 대한 국내 정서가 부정적이고, 정부 규제가 강화되는 것도 이들에게는 부담이 됐을 것”이라며 “한국을 금융허브로 발전시키려는 정부의 노력 가운데 핵심이 자산운용 분야인데 골드만삭스자산운용 등이 철수하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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