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에너지기업인 삼천리는 1955년 10월 함경남도 출신의 고 이장균 유성연 명예회장이 공동 창업한 ‘삼천리연탄기업사’가 모태다. 연탄사업에서 시작해 가스와 지역난방 공급자로 설립 이후 57년간 흑자경영을 해 온 이 회사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본사에서 만난 한준호 회장(67)은 “발전소 건립으로 에너지기업의 꿈을 이뤘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삼천리는 지난달 26일 경기 안산시에서 액화천연가스(LNG)복합화력발전소 건설에 착공했다. 한 회장은 “57년간 연탄과 가스 등 1차 에너지만 공급하다가 이를 가공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모든 에너지사업자의 꿈”이라고 말했다.
삼천리는 창업주의 둘째 아들인 이만득 회장이 경영을 해오다 2010년 말 한 회장이 바통을 넘겨받았다. 한 회장은 행정고시 10회 출신으로 동력자원부와 산업자원부 에너지 분야에서 근무한 뒤 중소기업청장과 한국전력공사 사장, 한국원자력산업회의 회장 등을 지낸 국내의 대표적인 ‘에너지통’이다.
이번 사업은 LNG를 연료로 사용해 생산한 전기를 전력거래소에 판매하고 발생한 열은 지역난방사업자에게 파는 것이다. 발전소가 완공되면 2015년부터 연매출 8400억 원에 영업이익 700억 원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천리의 지난해 매출이 2조9000억 원, 영업이익이 350억 원(영업이익률 1.7%)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발전소는 신성장동력인 셈이다.
한 회장이 발전사업에서 높은 수익을 예상하는 것은 정부의 장기적인 전력공급 계획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정부가 전력 공급이 안정될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원전이 예정대로 건설된다는 전제가 깔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 대선후보들이 원전 재검토나 폐지를 주장하고 있어 추가로 원전을 짓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민간 발전사업자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해진다는 게 한 회장의 판단이다.
2004∼2007년 한전 사장을 지낸 그는 최근의 원전 고장도 우려스럽지만 더욱 걱정되는 것은 화력발전소라고 지적했다. 한 회장은 “잦은 원전 고장으로 화력발전소가 정비를 할 여유도 없이 계속 운영되다 보니 고장의 위험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전의 누적적자가 10조 원에 이르러 송·배전선 등을 보수하고 전력의 효율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도 이뤄지지 않아 향후 전력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최근 김중겸 전 한전 사장과 지식경제부의 갈등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오너만 바라보며 경영하는 데 익숙한 민간기업 출신 사장들은 수익성에만 골몰해 정부와의 협상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전 사장이 전기요금을 올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부와 불필요한 갈등을 빚을 필요는 없다”고 충고했다.
오랜 관료생활에도 불구하고 한 회장은 ‘승부사’ 기질을 지녔다. 2009년 평택국제화지구의 집단에너지사업자 선정에서 대기업인 SK를 제쳤는가 하면 광명보금자리지구의 집단에너지사업자 선정에서는 GS칼텍스와 손을 잡기도 했다. 한 회장은 “평소 친분이 있는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을 만나 공동사업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물 산업이 민영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발 빠르게 하수 처리업체를 인수하기도 했다.
삼천리는 창업 이후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지만 외식사업에서는 고전하고 있다. 퓨전 태국음식 레스토랑인 ‘차이797’을 운영하던 자회사 SL&C는 2010, 2011년 연속 적자를 내고 최근 삼천리ENG에 합병됐다. 한 회장은 “당장은 어렵지만 이만득 회장이 외식 및 문화사업에 관심이 많아 향후 식량 및 문화사업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하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삼천리의 흑자 전통을 이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 정부가 전기요금을 현실화하지 못하고 국내에서는 수익성이 낮은 국내 정유회사들의 현실을 간과한 채 알뜰주유소를 도입해 시장을 왜곡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 회장은 “차기 정부에서도 서민들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정치적인) 압박 때문에 에너지정책이 정상적으로 펼쳐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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