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 없다”는 혹평을 받았던 애플의 새 스마트폰 ‘아이폰5’가 국내에서도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얼어붙어 있던 통신시장이 다시 들썩거릴 정도입니다. 혁신적이지 않다는데 소비자들은 기꺼이 줄을 서서 주머니를 엽니다. 왜 그럴까요.
저도 주말에 이 아이폰5를 샀습니다. 개인적인 이유로 빨라진 속도, 얇아진 두께보다 카메라에 눈길이 가더군요. 렌즈를 덮고 있는 작고 동그란 유리덮개가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바뀌었는데 고급 시계 유리에 사용되는 경도 높은 소재로 흠집을 줄였다고 합니다.
혁신이 아니라 사소한 변화입니다. 겨우 렌즈 덮개죠. 하지만 이 렌즈 덮개는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경쟁사 어디에서도 쓰지 않는 소재입니다. 지난 2년 동안 아이폰4를 쓰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이 뿌옇게 나오던 기억이 납니다. 알고 보니 렌즈 덮개에 미세한 흠집이 수없이 나있더군요. 그저 주머니에 동전과 함께 넣고 다닌 것뿐인데 결국 뒤쪽 유리를 통째로 갈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폰5가 나왔습니다. 저를 괴롭혔던 문제가 해결된 거죠.
전에 한 번 이 칼럼에 쓴 적이 있습니다만 스티브 잡스의 전기에는 ‘제품(product)’이란 단어가 432번 등장합니다. ‘이윤(profit)’은 39번 나오는 데 그칩니다. 최근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잡스 전기보다 훨씬 짧은 인터뷰를 비즈니스위크와 나눴습니다. 거기서도 제품이란 단어는 43번 등장했고, 이윤이란 단어는 아예 없었습니다.
그리고 인상적인 얘기가 나옵니다. 지금도 매일 수천 명의 소비자가 세계 각국에서 쿡 CEO에게 e메일을 보낸다는 겁니다. 특히 “페이스타임(아이폰 영상통화 기능) 덕분에 멀리 떨어져 사는 암에 걸린 어머니와 얘기할 수 있어서 고마웠다”는 식으로 마치 친구에게 쓰는 것 같은 편지가 온다고 합니다. 애플 CEO는 이런 소비자가 “가족 같다”고 하죠.
가족은 애증이 교차하는 존재입니다. 쿡 CEO가 처음 입사한 날 애플의 정문 앞에서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뉴턴(애플이 만들던 PDA)을 계속 만들라”면서요. 자신이 쓰던 제품에 감정을 이입한 탓입니다. 애플도 마찬가지로 온갖 작은 비판에 민감하게 대응했습니다. 지도가 엉망이라거나, 잘못 쥐면 통화가 안 된다는 식의 비판이 나오면 늘 CEO가 직접 나서서 해명하고 경쟁사 제품을 쓰라거나, 범퍼를 나눠주는 식으로 대응했죠.
사실 전화기란 그저 통화만 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애플 식의 이런 수많은 사소한 노력들은 별 의미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기업과 대화한다는 느낌을 주고, 최고의 제품을 쓴다는 확신을 주는 건 그런 사소함의 총합입니다. 누군가는 구두가 운동화가 아닌데도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는 구두를 내놓고, 누군가는 수첩 한 권을 평생 보관하는 양장본 도서처럼 하드커버에 책갈피 줄까지 달아 만들죠. 하루 종일 걸어도 발이 편한 구두와 항상 들고 다녀도 쉽게 망가지지 않는 수첩을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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