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옷장을 열어보니 안 입는 옷이 참 많다고 느낀 한 직장인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역시나 비슷한 상황이었다. 옷이 필요한 사람들과 나눠 입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4명의 직장인이 의기투합해 입지 않는 정장을 기부 받아 구직 중인 청년들에게 면접용 정장을 저렴하게 대여하는 ‘열린옷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시작한 지 1년도 안 지나 벌써 180여 벌을 기증받았다. 구직자들 사이의 입소문은 더 빨라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박원순 서울시장이 선거 유세 때 입었던 정장 두 벌을 기증해 화제가 됐다.
취업포털 인크루트 조사에 따르면 청년 구직자의 91.9%가 면접용 정장 구입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청년 구직자가 소득이 생기는 일자리를 처음 구하기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은 약 11개월. 학자금 대출, 각종 사교육비와 시험전형료 등 돈 나갈 일투성이다. 특히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부모 지원 없이 이 기간을 견디다 보면 ‘워킹 푸어’가 되기도 전에 ‘잡서칭 푸어(job-searching-poor)’가 되고 만다. 이런 청년 구직자들에게 평균 30만 원이 넘는 정장은 생활고를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구직 경험이 많은 청년 직장인들이었기에 ‘옷 한 벌 값’이라는 말에 두려움과 막막함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열린옷장 프로젝트 운영자들은 옷과 함께 사회 선배들의 생생한 경험과 응원을 청년 구직자에게 나눠주는 플랫폼을 만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청년유니온은 직접 취업코칭 전문가를 강사로 섭외하고 구직자가 꼭 알아야 할 노동법 상식을 알리는 취업코칭 프로그램 ‘둥지’를 진행해 왔다. ‘청년연대은행’이라는 이름으로 구직 기간 중 신용불량자로 추락하는 청년을 위한 마이크로크레디트 은행을 설립하고 재무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청년도 있다. 서울 동작구 청년회는 줄일 수 있는 건 식비밖에 없다는 고시촌 청년들을 위해 건강한 도시락을 공급하는 사업을 추진하려 한다.
이런 청년들에게 거점 공간이 제공된다면 든든하고 실질적인 ‘청년 서포터 허브’가 조성될 수 있다. 대부분의 지하철역에는 화장품 가게, 편의점, 카페 등이 영리 목적으로 입주해 있다. 하지만 시민을 위한 공간은 아직 많지 않은 편이다. 지하철역의 유휴 공간, 특히 청년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공익적 활동을 하는 청년들을 위해 작은 공간을 마련해 주면 어떨까.
예를 들어, 청년건강 위험지대인 노량진역에는 ‘청년희망도시락 가게’와 건강검진 및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 ‘청년건강 카페’를, 청년과 직장인 유동인구가 많은 신논현역, 광화문역에는 오프라인 열린옷장을 열어 직장인들이 출퇴근길에 편하게 옷을 기증하고, 구직 청년들은 옷을 빌려 입으면서 선배들로부터 가벼운 인생 상담과 취업 조언도 받는 ‘사회 선후배 매칭 카페’를 운영하는 거다.
지하철 노선도를 펼쳐 놓고 시작한 상상이 멈추질 않는다. 큰 재원도 필요 없다. 지하철을 ‘청년활력 플랫폼’으로 만들자. 지하철을 이용하는 다른 세대 시민들에게 청년들의 기운이 전해지면 서울 지하철역들이 건강한 세대 소통의 물꼬가 열리는 활력의 명소로 재탄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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