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상조업체를 차려 회원들로부터 받은 돈 24억 원 중 9억 원을 빼돌린 안모 씨(54·여) 부부가 지난달 경찰에 붙잡혔다. 부인 안 씨는 전과 14범, 남편 구 씨(60)는 전과 33범이었지만 이들이 상조업체를 차려 운영하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관련법에 따르면 회원으로부터 매달 받는 납입금(선수금) 중 30%인 7억2000만 원을 은행에 예치해야 했지만 이들 부부는 단 1억5000만 원만 은행에 넣었다. 도산할 경우 고객이 보호받을 길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예치액 입금을 강제하거나, 해당 업체를 제재할 제도적 장치는 없었다.
일부 상조업체의 불법·탈법 영업이 계속되며 업계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10년 이상 계속된 횡령 등 상조업체 문제를 해결하려면 예치금 비율을 충족하지 못하는 업체에 대한 처벌을 의무화하는 등 지금보다 강력한 규제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하고 있다.
○ 규정은 30% 예치지만…
국내 할부거래법상 상조업체는 고객이 납입한 돈 중 절반 이상을 금융회사에 예치하거나 보험·공제 등에 가입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0년 해당 규제를 도입하며 기존 업체에 대해 연도별로 예치금 비율을 높이도록 했다. 올해는 고객 돈의 30% 이상을 금융회사에 넣어야 하지만 상조업체 10곳 중 1곳이 넘는 36곳은 이 기준에 미달했다. 기준미달 업체에 돈을 넣고 있는 회원들만 전국적으로 8만5162명이나 된다.
문제는 이들 업체에 대한 제재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공정위 당국자는 “상조업계에 소비자 피해보상과 관련된 보호 장치를 마련하긴 했지만 이후 예치비율이 떨어질 때 제재할 수 있는 강제 규정은 미처 만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10일 고객 수를 속여 실제 예치 선수금보다 적은 돈을 은행에 넣은 미래상조119 등 3개 업체에 시정명령을 내리는 한편 검찰에 고발했다. 선수금 예치와 관련한 첫 상조업체 처벌 사례다. 하지만 이들 업체도 선수금 예치비율이 낮은 것 때문에 처벌받은 것이 아니라 고객 수를 줄인 허위 자료를 은행에 제출해 고발됐다.
이건묵 국회 입법조사관은 최근 ‘상조금 선수금 보전 문제점’ 보고서를 통해 “할부거래법에 선수금 보전의무비율을 채우지 않아도 강제 조치가 없기 때문에 고객이 피해에 노출되고 있다”며 “모든 업체가 선수금 비율을 충족했을 때만 상조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법 개정안 나온다지만…
공정위는 이런 비판 여론을 의식해 올 7월 할부거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선수금 보전비율을 위반한 사업자에게 시정조치를 내릴 수 있고, 위반 행위가 반복되는 업체의 경우 최장 1년간 영업을 정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개정안에도 선수금 보전비율을 맞추지 못할 경우에 부과할 수 있는 처벌 규정은 포함되지 않았다.
공정위 당국자는 “국내 상조업계 역사는 아직 정착단계 수준”이라며 “당장 처벌을 강화하면 상조업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한국식 상조업체의 ‘원조’격인 일본은 전체 고객 선수금의 50%를 예치하지 못하는 업체의 신규 회원 유치를 금지하고 있다. 미국은 전국장례지도사협회(NFDA) 가이드라인에 따라 특별한 예외 규정을 제외하면 고객이 낸 상조기금 100%를 신탁하도록 규정했다.
김홍석 선문대 교수(경찰행정법학과)는 “공정위가 일본 제도를 원용해 국내 상조업체 예치금 비율을 50%로 규정했지만 소비자 피해 등을 고려하면 더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며 “상조회사의 상거래 자유를 막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고객보호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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